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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Z Sep 16. 2023

슬픔이여 안녕

언젠가 어른이 될 서로에게

어린 시절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고,

노래를 듣고 부르길 좋아했던 나.


학창 시절, 일기를 쓰면 용돈을 주시는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기 위해 나는 '노래 가사'를

꽤 많이 활용했다.


마치 시처럼 펼쳐지는 노래가사는

내가 굳이 생각해내지 않아도 술술

마음속으로 부르면 흘러나왔다.

아빠는 그걸 아시면서도, 눈을 감아주시며

무조건 하루 당 얼마씩의 용돈을 주셨다.


노래도 내게는 누군가 건네는 이야기 같았다.

짝사랑하는 친구를 혼자서 좋아하며  가슴앓이

할 때는, 그리고 그 아이가 이성친구가 생기게

된 걸 알게 됐을 때는 김광진의 '편지'를 들으며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하며 마음의 다짐을 하기며 울기도 했고,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를 들으며

그래 나에게도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겠지,

하는 희망 섞인 다짐을 하기도 했었다.


지쳐서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S.E.S의 '달리기'같은 노래를 들으며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쉴 수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노래를 들을 땐

그 노래의 가사를 곱씹는 것이 내 습관이다.

좋은 가사의 노래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

가슴 떨릴 정도로 너무 설레고 행복하다.


가사는 그래서 내게 좋은 노래의 조건 중

1순위다.


공교롭게도 영어가 뛰어나지 못해

안 들리는 팝송은 비틀스의 '렛잇비'나

카펜터즈의 '예스터데이 원스모어' 류의 노래들,

퀸의 노래도 빼놓을 순 없지만.


오늘은 책상의 위치를 바꾸며

나의 작업실, 나의 방을 뒤집어 엎고

청소를 하는 대작업이 있었다.


오늘은 신랑이 집에 있는 날이니

힘쓰는 일은 신랑에게 힘든 척하고 맡겼어야

하는데, 내가 위치를 바꾸어 놓은 걸 보더니

'역시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구나.

정신력의 문제야.' 라며

나의 정신력에 박수를 보내는 신랑.

아차, 내가 실수를 했구나.

쌀 한 가마니도 번쩍 들어 올릴 것 같으면

일꾼은 내 몫이 되는 것을!

내가 힘을 조금 쓸 수 있다는 걸 들켜버렸다.


서로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캘리그래피 강습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건,

역시 배움은 스승이 있어야

느는구나,  였다.

혼자서 늘 뭔가를 해내려 애쓰던 나는

그제야 교육의 효과에 대해, 절실히 느꼈다.

방향을 제시해 주는 정말 좋은 스승은

성장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청소를 하다가,

열심히 끼적이던 노트를 발견했다.

그때 나의 열정이 담겨있었다. 다양한 모양,

필체를 연습하며 즐거워했던

그때 그 시간이 살아나는 듯했다.


갑자기 무언갈 너무나 적고 싶어 졌고,

그때 마침 듣고 있던 

잔나비 노래를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를 적느라 곱씹는 가사는

내가 아직 이 노래를 100%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했다.

그동안엔 내가 멜로디만 듣고 있었구나.


이젠 다 잊어버린 걸
아니 다 잃어버렸나
답을 쫓아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 거야
돌아서던 길목이었어
집에 돌아가 누우면
나는 어떤 표정 지을까
슬픔은 손 흔들며
오는 건지 가는 건지
저 어디쯤에 서 있을 텐데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끔 뒤 돌아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살다가 문득 슬퍼질 때,

내가 어찌 살고 있는 건지

이게 맞는 길인지 헷갈리고 갈 길을 잃을 때

그래 그 슬픔은 결국

우리에게 또 다른 빛으로

그것도 슬픔을 극복하고

더욱 찬란히 빛나는

그런 빛으로 피어난다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되찾아야겠다는 막연한 결심.


가사 덕분인지

좋아했던 캘리그래피 글쓰기를

끼적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을 가지는 걸 보니

아주, 아주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나 하는 안도도 함께.


이제는 슬픔이 와도

"슬픔, 안녕?"

하며 인사를 건네볼까.


슬픔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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