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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Z Oct 24. 2023

흰발농게의 사랑

아이의 책으로 인생을 배우다

(*엄마가 되어 아이들의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부끄럽게도 새로운 사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하기도 하다. '아이의 책으로 인생을 읽다'에서는 아이와 함께 책을 보며 알게 된 지식과 그것을 통해 느낀 바를 글로 적어 보려 한다.)



 한쪽 집게만 유난히 커서 제 몸의 두 배 크기를 하고 있는 유난히 흰 게. 그래서 이름도 흰발농게라는 녀석을 얼핏 보고는 놀라기 일쑤다. 한쪽 집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큼, 혹은 조금은 작아 보이는데 한쪽만 유난히 거대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녀석은 그것이 지극히 정상의 모습이다. 본래 수컷 흰발농게는 한쪽 집게가 놀랄만치 큰 게 특징이기 때문이다. 마치 지나치게 부풀어 보인다거나, 혹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원래 모습과는 다른 변종이 발생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나는 순간 살짝 부끄러웠다. 나의 눈, 나의 기준만으로 녀석을 재단하고 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에 내 속의 편협함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흰발농게는 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존재했는데, 내가 그 녀석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을 뿐인데. 나의 그 시선이 녀석에게는 얼마나 따가웠을까.


 그런데 눈에 띄는 하얗고 커다란 집게발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녀석의 러브스토리였다.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던 녀석에게서 우리와 닮은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흰발농게는 믿기지 않을 만큼 우리네 인간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흰발농게의 커다란 집게다리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도구였다. 그 크기에 따라 자신이 지을 집의 크기가 결정되고, 또 자신이 좋아하는 암컷을 쟁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고 한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단으로 집게다리는 자본주의의 속성으로 보자면 인간사회에서는 큰 집을 얻을 수 있는 능력, 재력 같은 것이었고 큰 집을 지을 수 있는 흰발농게만이 암컷을 쟁취한다는 것 또한 능력 있는 남성이 원하는 여성과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우리네 사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속물적이라 생각했던 인간사회의 모습이 생태계에도 똑같이 존재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테두리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이해한다더니 그게 딱 맞았다. 난 딱 내가 아는 그만큼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또한 인간들만의 고생이 아니었다. 사랑은 원래 치열하고, 속물적이며, 처절한 것이었구나. 너희에게도. 그런데 과연 인간의 흰발농게와 같은 선택에는 속물적이라는 단어를 붙이지만, 흰발농게에게 속물적인 느낌을 1%이라도 받았나. 그저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이 아니었나. 그 또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차별적 시선이었던 것인가 하는 철학적 사유에까지 다다른다.


 생태계에서 생존의 문제는 어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고, 또 사랑을 하는 것이 본능적 행동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방식은 서로 다를 테지만. 하지만 안타깝게도 녀석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란다. 그들이 사라지지 않고 세상에서 우리처럼 저들의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사랑하고, 또 살아 주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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