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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Z Nov 24. 2023

엄마, 사람은 왜 태어난 거야?

언젠가 어른이 될 서로에게

어차피 죽을 건데. 


덜컹.

아이의 질문 하나에 이렇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줄이야.

아니, 아이가 이같이 철학적이고도 무거운 질문을 불과 8살에 던질 줄이야!


엄마이지만 여전히 그 같은 질문엔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는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 어린 초등학교 1학년 첫째의 입에서 나온 그 질문이 꽤나 무거운 책임감으로 내게 돌아오고 말았다. 


'이 녀석은 왜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걸까?' 

'벌써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생각이 너무 깊고 복잡한데, 괜찮은 거야?'


인간이라면 누구나 던질 수 있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에 대해 

난 덜컥 걱정과 우려부터 하고 있었다. 


"벌써 그런 철학적인 질문을 하네~?"


라며 치켜 세워 주면서도 짐짓 걱정되는 마음과 함께 이걸 어찌 설명해 주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데 누구도 자기가 태어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그게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건 아니야."

"근데,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야 해?"


"아. 그렇긴 하지. 근데 어차피 배고플텐데 밥은 왜 먹고, 또 졸릴 텐데 왜 자며, 

어차피 또 씻을 텐데 세수랑 양치는 왜 할까?"


라고 순간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게!!"라고 맞 받아칠 것 같아 그러진 못했다. 

그리고 아이의 질문은 순수하게 궁금한 질문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것이 세상을 20년 이상 살아온, 미성년자를 벗어난 성인들이 느끼는 그런 인생에 대한 회의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존재와 생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이들이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7살~12살 이라고 한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우리 집에 있는 큰 아이는 8살,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할 나이였다. 

자연스런 발달 과정에서 나온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엄마가 그에 대한 현명한 대답을 해주어야 할 차례였다.


"음... 세상 모든 것들은 자기가 태어난 이유를 알고 태어난 것은 하나도 없단다. 그냥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 태어나서 죽는 것은 누구나 똑같단다. 대신 사람은 조금 그 시간이 길고, 다른 동물들은 더 짧기도 하고. 그렇게 각자의 시간이 다를 뿐이야."


어렵다. 하지만 아이에게 죽음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람은 길면 100년을 산다 하지만, 하루살이는 그렇지 않겠지? 하루살이들은 자신들의 세상 속에선 그렇게 살아가니 그 수명이 짧다고 느끼진 않을 거야. 오히려 하루살이가 다른 하루살이들과 달리 100년을 산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물으니 아이가 답한다.

"그럼 오늘 죽는 친구도 보고, 내일 죽는 친구도 보겠네."

"그렇지, 100년을 사는 하루살이가 우리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난 녀석의 본질적인 질문, 태어난 이유에 대한 답은 여전히 내려주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음... 우리가 태어난 건 이렇게 만나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고 그런게 아닐까?"


과학적인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아이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도 싶고, 나의 작은 한 한마디가 아이에게 긍정적인 삶의 방향이 되어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우리들이 함께 할 시간을 주신 거라고. 아이에게는 꽤나 장황하게 이런 내용을 이야기 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런 질문을 들은 나도 꽤나 당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론 이성적인 한 마디보다, 아이의 마음을 안심시켜줄 따뜻한 온도의 말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순간이라 생각했다. 이 질문은 살면서도 끊임없이 마음 속에서 수 십, 수 백 번 스스로를 고민에 빠뜨릴 수 있는 그런 질문이니까. 그럴 때마다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 수 많은 질문들로 엄마를 당황에 빠뜨릴 너의 물음표들, 

엄마가 현명하게 잘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혼자 계속 되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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