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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Sep 03. 2021

스와로브스키 펜의 응원

오늘의 단어: 선물

가족과 절친한 친구, 연인에게 받은 선물들도 하나하나 소중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뜻밖에도 타국에서 아주 잠깐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의 선물이다. 아일랜드에서 3개월간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우리 반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A가 있었다. 늘 히잡을 쓰고 다니던 그 아이는 원래 수줍음이 많기도 하고  남학생들과는 거리를 두다 보니 남녀가 함께 있는 친구 그룹에 쉽게 섞여들지 못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다 A를 마주쳤다. 처음에는 몇 마디 인사만 나누려고 했는데,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라는 말까지 하고 나자 같이 가겠냐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날 우리는 함께 〈보이후드〉를 봤고, 예상보다 긴 러닝타임에 놀라 어두운 극장 안에서 눈을 마주치며 킥킥 웃었다.


그 뒤로 A와 종종 함께 시간을 보냈다. 둘이 따로 만난 적은 없지만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수다를 떨기도 했고, 한 번은 A의 집에 여자 친구들과 초대를 받아 놀러 가기도 했다. 히잡을 벗고 멋진 드레스를 입은 A는 우리에게 민트 티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과자들을 대접해 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자가 가족인 남자와 동행하지 않으면 해외에 나갈 수 없어서, A의 공부를 위해 아버지가 퇴직하고 함께 아일랜드에 오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정된 시간이 흐르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짜가 다가왔다. 친구들과의 송별 파티 자리에서 A는 수줍게 카드와 선물을 내밀었다. 선물은 부드러운 공단 주머니에 든 스와로브스키 펜이었고, 카드에는 꼭 멋진 작가가 되길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던가? 내 취향에는 지나치게 화려한 디자인의 펜이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나가듯 한 말을 기억하고 응원을 담아 고른 선물에 진심으로 고마웠다. 펜은 지금도 연필꽂이에서 반짝이며 노트북 앞에 앉은 나를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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