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간 여행
'포도'하면 떠오르는 이솝 우화 한 토막.
여우는 포도를 따먹고 싶었으나
그리할 수 없자
저 포도는 시큼해서 못 먹을 거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서귀포에서 '포도 호텔'에 갔을 때,
내 심정은 그 여우의 심정과 비슷했다.
'포도 호텔'은
'수풍석(水風石)' 박물관, '방주 교회' 등
제주도에 많은 작품을 남긴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포도송이를 닮았다 하여
'포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건축 초기부터 포도 송이를 염두에 두고
지었다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포도 송이 모양이 된 것 같다.
나는 무엇보다 포도알 모양의 지붕과
그런 지붕이 이어진 호텔의 전경을
촬영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리 폴짝, 저리 폴짝,
전망대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뒷동산 ('오름'일까?)에도 올랐고
근처 높은 지대까지 올라가 봤으나
포도알 모양의 지붕이 보이는
촬영 포인트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포도가 시큼해서
맛없을 것이라 했던 여우처럼
이곳은 드론이나 헬리콥터 아니면
지붕을 촬영할 수 없다며
내 욕심을 버렸다.
그리고는 땅을 딛고 서서
호텔의 외경만 구석구석 촬영했다.
포도 호텔은 글자 그대로 포도알처럼
동글동글한 곡선이 압권이다.
게다가 정원수들도 덩달아 동글동글하다.
이곳에서도 곡선의 부드러움이 돋보인다.
포도 알 하나에 방 하나가 있으면
참 재밌겠다 싶은데,
이 호텔에 투숙해 보지는 못했으니
세부적인 것은 알 수가 없다.
1박도 해 보지 못한 이유는, 솔직히,
가난한 직장인의 취미 생활로 지출하기에는
1박 비용이 높은 편이라서 그랬다.
이타미 준의 여느 작품처럼
포도 호텔 역시 '빛'을 고려했구나 싶다.
아무도 제재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하루 종일 이 작은 호텔을 (26개 객실)
촬영할 수 없어
'19년 4월 봄 볕 속에서 몇 시간 찍었지만
지붕과 지붕의 그림자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건물 한 구석의 돌담도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여지는 것을 봐서는
뭔가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건축가 이타미 준의
의도였으리라 생각하는데,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니,
내 스스로에게 답답하다.
포도알 닮았다는 지붕은 달리 생각하면,
제주의 오름을 닮은 듯도 하고
입구 쪽에 펼쳐진 제주의 상징,
돌담과 어우러지는 걸 보면
제주 전통 초가집 지붕 같기도 하다.
하늘에서 봐야 포도알처럼 보이건만,
귀동냥으로 듣고 인터넷 사진을 보고서는
'포도'라고 하는,
땅 딛고 봐서는 포도인 듯, 포도 아닌데,
포도 같기도 한 '포도호텔'
언젠가 부자가 되면 1박해 볼 수 있을까?
그리하면 이타미 준의 컨셉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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