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네오 Sep 09. 2020

엘리베이터 앞에 선 남자의 한숨

불편함의 미학


오늘 아침엔 신문이 오지 않았다.


문 앞에 놓인 신문을 집 안으로 들이는 일, 그게 내 첫 번째 일과다.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같이 나와 아침을 마주하는 녀석이 눈에 안보이니 뭔가 허전했다.

'간밤에 바람이 엄청 불던데 날아가 버렸나?' 복도 끝에서 끝까지 샅샅이 살펴봤지만 어디에도 기척은 없었다.

"엄마, 오늘 신문 안 왔어!" 친구의 잘못을 선생님께 일러바치듯 말했다.

엄마는 이제 끊긴 거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 참 이거 나만 보는 신문이었지' 

그랬다. 신문이 갑자기 안 오거나 끊겨도 나를 제외한 가족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집에서 마늘을 까거나 삼겹살 구울 때를 제외하면 다 보고 난 신문의 효용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얘가 이래 봬도 폐지 버리는 곳에서는 꽤 인기가 좋다.)

아직 못 읽은 어제자 신문이 있었기에, 그냥 안 오는가 보다 하고 넘어가려 했다. 실종된 신문의 행방을 찾은 건 엄마였다. 출근길에 1층 우편함에 꽂혀있는 신문을 보고 친히 카톡을 남기셨다.


그리고 깨달았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는 것을.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춘 건 어제 오후부터였다. 관리실에서 안내방송이 나오더니 우리 동 엘리베이터 부품이 고장 났는데 오래된 제품이라 교체가 늦어질 것 같다 했다. 나야 원체 집돌이에 코로나 핑계를 더해 나갈 일이 거의 없었지만 가족들에게는 상당한 불편이었다. 그날도 나갔다 들어오는 부모님의 거친 숨소리에 보통 일이 아님을 느꼈다. 집이 고층이라 부모님 연세에 마스크를 끼고 계단을 올라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신문 배달부도 새벽부터 당황했을 것이다. 시간 안에 배부를 끝내야 하니 일일이 계단을 등반해 전달할 수도 없고 우편함에 꽂아 넣는 수밖에. 뜻밖에 고장으로 평소보다 일이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뒤이어 온 택배 배달원도 같은 심정이었을까? 온라인으로 주문한 냉동식품이 올라오질 못한 채 현관에서 주인이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고치기 전까지 계단 이용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어느 한쪽의 불편은 다른 한쪽에 편의를 제공한다. 그동안 내가 신문과 택배를 받아온 방식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매개로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었지만.


택배를 가지러 내려간 김에 신문이 꽂혀있다는 우편함을 살폈다. 부피가 큰 신문을 앙다물고 있어야 할 입이 굳게 닫혀있었다. '무거워서 밖으로 뱉어버린 건가' 했지만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이에 누군가 가져간 게 분명하다. 아끼는 장난감을 뺏긴듯한 허탈감에 몇 분을 서성였지만 단서는 찾지 못했다. 하루쯤 안 와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왔다는 신문이 없어지니 분하다. 좀 더 부지런했다면 뺏기지 않았을 텐데.


냉동식품이 든 스티로폼 박스를 안고 계단을 올랐다. 두 계단씩 성큼성큼 오르니 고지가 금방이었다. '근데 이거 생각보다 숨차잖아?' 나도 모르게 마스크 안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머리도 살짝 띵한 것 같고. 내가 이 정도로 약골이었다니. 


코로나로 인해 집 앞 헬스장을 못 다닌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원래대로라면 진작 만료되었을 회원권이지만 현재는 무기한 연장 상태에 들어갔다. 운동도 습관이라 헬스장을 다닐 땐 일주일에 다섯 번도 갔는데 집에선 일주일에 한두 번, 그게 줄어서 한번, 언제 중단돼도 이상하지 않은 비인기 프로그램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 앉방과 눕방 모드 편성이 급격하게 늘면서 체력 저하를 부추겼다.


여기서 끝났다면 글도 쓰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새로운 미션을 알리는 문자가 띵동 도착했다.

<주문하신 상품을 경비실에 맡겨 놓았으니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하하 1층도 아니고 경비실이라니 날 위해 아파트 정문까지 산책시켜줄 필요는 없었는데'

야간 산행에 나서듯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내려갔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 선선한 밤공기였다. 경비원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미션 물품인 두유 한 박스를 입수했다. 오랜만에 하는 밤 산책이 나쁘지 않았다. 단조로운 일상에 이런 것 하나쯤은 있어줘야 할 듯싶다.


다시 계단 앞에 서니 도전 욕구가 불타올랐다. 안정적인 호흡 배분이 이뤄지면 빠르게 올라가도 아까처럼 힘들진 않을 거야라고 자신하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두 칸씩 정복해갔다. 당연히 숨이 찼지만 머리가 띵하진 않았다. 이 정도면 절반의 성공이다. 숨을 몰아쉬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운동을 끝낸 뒤의 행복한 나른함까지는 아니었지만 몸도 적당히 쓰이는 게 반가운 듯했다.


고장 난 엘리베이터가 하루를 이렇게 바꿔놓을지 몰랐다. 고요한 물가에 누가 돌을 던진 느낌이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귀찮았는데, 내가 주변을 얼마나 당연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 살 수 있을까? 편리함이 없는 세상에 사는 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린 편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불편해지기 위해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소중함을 잃을 수 있다. 꼭 건강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관계, 일상, 기억부터 나 자신까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고 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것들이다. 나도 나를 좀 더 불편하게 할 필요가 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내가 원하는 편안함을 누리기 위해.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을 숨겨보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