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아이가 설겆이하는 나를 불렀다.
"엄마, 나 허리 아파"
('거봐, 앉아 있기만 하니까 그렇지 내가 운동하라고 했지. 거실에 있는 실내자전거라도 타라고 했잖아')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자동생산됐다. 이 말이 입 밖으로 못 나가게 입술에 꽉 힘을 주었다. 뭔 말이라도 해야하는데. 내 머릿속 말은 안된다. 딸 아이의 말을 따라 하기로 했다.
나: "아고, 허리 아파?"
딸: "어, 생리통인 거 같아. 나 원래 생리통 없는데~ "
나: "아프겠당. 핫팩 챙겨줄게~"
딸: "엉"
휴~ 다행이다. 다행인 이유는 2가지다. 운동을 하지 않아서 허리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었고, 또 하나는 학교 가기 전에 아이를 짜증나게 하지 않아서였다. 딸아이의 마지막 대답인 '엉~' 까지, 우리의 대화는 물흐르듯이 이어졌다.
딸아이의 말을 따라하기로 한 미세조정 전략이 들어맞은 것 같아서 스스로 기특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이 별거 아닌 대화가 뭘 그렇게까지 기특할 일이냐 하겠지만, 나에겐 꽤 대단한 업적이다.
습관적으로 자동생산되는 말들을 하나씩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내 하루를 미세조정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내 머리속에서 어떤 생각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지, 그 생각 중에 어떤 말이 입으로 자동 출력되는지, 내 행동 중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cctv로 관찰하듯이 보고 있다. 나혼자산다를 촬영하는 감독처럼.
만일 방금 전 머릿속에서 습관적으로 만들어진 저 말을 내뱉었으면, 딸아이는 생리통이라는 말도 못 꺼내고 짜증만 냈을 거다. 입을 쭉 내밀고, 발은 쿵쿵거리며 신발을 신경질적으로 신고 현관문을 쾅 닫았겠지. 학교 다녀오겠다는 말은 당연히 생략했을거고.
'엄마가 내 허리건강을 걱정하는구나~' 로 해석해서 들을 수 있을 만큼, 딸아이는 아직 늙지 않았으니까. 지구에서 산 지 16년 된 존재다. 절대 잊지 말자. 16년 밖에 안된 아이가 만일 내 잔소리를 걱정하는 말로 해석해서 들었다면, 그러면 너무 슬픈 일이다. 16년 동안 지독히도 험난한 인생을 살았다는 얘기니까. 짜증을 냈다면 다행인 거다. 그동안 무탈하게 편안하게 산 거니까. 아이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