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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Sep 11. 2024

고양이 공동육아


처서가 며칠 지난 8월의 끝자락, 출산일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와 배는 하루가 달리 불러오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늘 그렇듯 거실에서 정원으로 향하는 창문으로 뒤뚱뒤뚱 발걸음을 옮겼다.


"Oh my god, babe! wake up! wake up!" 창문을 열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며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마당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안 돼 보이는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가 놀고 있는 것이었다.


가끔 고양이 손님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새들이 물을 마시러 오기도 하고, 달팽이며 지렁이며 정말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는 우리 집 정원이지만 갓 태어난 고양이 새끼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다섯 마리나.


잠에서 깬 남편과 마당을 더 자세히 들야다보니 수국 옆 마당 코너 평상에 어미 고양이가 자리를 틀고 새끼들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끔 집 가까운 길에서 보이던 그 고양이였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거지? 남편과 어리둥절해하다가 날이 꽤 더워 얼른 깨끗한 물을 담아다가 고양이들이 마실 수 있도록 마당에 내두었다. 혹시라도 새끼들이 배가 고플까 길고양이를 위해 집에 구비해 두는 고양이 간식들도 여럿 꺼내놓았다. 경계를 살피더니 금세 간식도 다 먹어치웠다. 혹시 아픈 데는 없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다섯 마리 모두 건강해 보였다.



배가 좀 불렀는지 정원에 화분들과 화단 턱을 오르내리며 정원을 놀이터 삼아 즐겁게 놀기 시작하는 새끼들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마음이 놓여 샤워도 하고, 밥도 먹고 다시 마당을 보니 어미 고양이가 사라지고 새끼들만 뛰어놀고 있었다.


설마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을 버리고 간 건가?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 상황을 설명하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집사 친구들은 똑같이 이렇게 말했다. 어미 고양이가 나와 남편을 아주 신뢰하고 있다고. 새끼 고양이들을 버린 게 아니라 잠시 우리 집에 맡겨둔 거라고. 예민한 어미 고양이는 내가 임신 중이라는 걸 알고, 같은 양육을 하는 처지라 믿고 맡겼을 수도 있을 거라고.


믿거나 말거나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를 언제 봤다고? 우리 앞에서 새끼들 젖을 물리더니 우리 집 정원을 어린이집 삼아 새끼들을 풀어두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어미 고양이라니.


어미 고양이에게 우리가 모르는 급한 일이 있었겠지? 살고 있던 집을 재 정비해야 된다던가, 급하게 먹이를 찾아야 하던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고양이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새끼 다섯 마리를 데리고 고분군투 할 수밖에 없었던 어미고양이가 너무 측은하면서도 한편으론 대견하고 멋져 보였다. 곧 나에게도 닥칠 육아하는 워킹맘이라는 미래에 어미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이 남일 같지가 않았다. 출산을 코앞에 둔 시점에 새끼 고양이 다섯마리가 집에 찾아온 것도 운명같았다.


그렇게 그날 하루 정원에서 공동육아를 했다. 다행히 새끼 고양이들은 울지도 않고 신나게 정원을 누비며 즐겁게 뛰어놀았다.


저녁쯤이 되니 어미 고양이가 돌아와 새끼들을 문밖으로 몰며 데려가기 시작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어미 고양이는 '다 알아'라고 눈빛으로 말 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배는 더 불러 오고, 뱃속의 태동은 점점 더 강해져 가고 있지만 어미 고양이처럼 의젓한 엄마가 될 준비는 아직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미 고양이처럼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주변에 손길을 뻗고, 함께 키워 간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그리고 새끼 고양이들처럼 태어날 우리 딸도 정원을 놀이터삼아 자연가까이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래본다. 정원 한켠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작은 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을 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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