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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Oct 02. 2024

나를 살리는 햇빛, 그리고 죽이는 햇빛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첫해에는 한 달 넘도록 지속되는 장마가, 그리고 두 번째 해에는 타들어가는 폭염이 찾아왔다. 정원일을 하면서 보내는 사계절은 냉난방 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의 건물 안에서 체감하는 계절과는 꽤 다른 차원으로 다가온다. 글로만 읽던 '기후위기'를 내 앞마당에서 경험하기 시작했다.


몇 해 전 지속가능한 농법인 '퍼머컬처'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수업에서 빠른 기후 변화로 한국 남쪽에서 재배되던 사과 같은 작물들이 강원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했었다. 최근에는 강원도 고랭지 지역에서 생산되던 배추가 온난화로 수확이 줄어 금배추가 되기도 하고, 제주 여행에 갔을 때 지역 뉴스에서는 가뭄으로 당근 발아율이 줄어 한숨 쉬던 농민들의 인터뷰를 보기도 했었다.


하늘과 땅의 변화는 고스란히 그 땅을 터전으로 자라는 생명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우리 인간들에게 영향을 준다. ‘돈’의 논리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가격상승의 변화로 가장 먼저 맞이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앞에 닥치고 있는 기후변화와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지나친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편하게 끝도 없는 더, 더, 더의 욕망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망치고 결국 자업자득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된 것 같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바다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바뀐 일상 중에 6월 초부터 시작해 9월까지 바다에서 수영을 하게 되었다. 바다 가까이 살다 보니 바다가 주는 삶의 풍요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이제는 바다다 없는 삶은 생각조차 못할 것 같은데 그런 풍요를 누리면서도 바다에 대한 걱정은 날로 더해져 간다.


장마와 태풍이 지나간 뒤에 오랜만에 바다에 나간 날이었다. 맑고 아름다웠던 바다는 쓰레기장이 되어있었다. 바다 어딘가에 떠돌고 있었던 사람들의 쓰레기는 장마와 태풍기간 동안 바람과 파도에 밀려 육지 가까이로 떠밀려 와 있었다. 어업을 하며 버린 쓰레기, 산업쓰레기, 생활쓰레기 등등 며칠 전까지 수영을 하며 뛰어놀던 바다가 쓰레기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다.


또 수온이 너무 올라 9월 말까지도 따뜻한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서도 바다의 건강과 안녕을 걱정하게 되었다.

자연은 스스로 자정작용을 한다고 했다. 우리가 지구에 안긴 고통이, 지구도 살기 위해 자정을 하며 자연재해로 인간에게 고통으로 돌아온다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진다.


처서가 지난 9월에도 가을비 한 방울 없이 뜨거운 햇빛이 계속 내리쬐는 정원에 식물들은 아무리 물을 주어도 시들시들하다.  



말라가는 흙과 잎사귀들을 바라보며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풍요롭게 살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더더더를 바라는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적당한 햇빛, 적당한 바람, 적당한 비. 기후도 적당한 기후가 점점 사라지고 점점 극단으로 치닫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어느새 ‘양극화’라는 것이 노멀이 되어버린 것 같다.


환경도 삶도 결국은 균형을 잃어가는 세상 안에서 나의 욕심이 나를 말려 죽이지 않도록, 내가 원하는 적당히 균형적인 삶은 과연 어떤 삶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답을 찾아볼 시간인 것 같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밤 정원에 앉아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아직 구하지 못한 답의 질문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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