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식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 계절을 참 좋아한다. 이 계절이 찾아오면 무작정 걷고 싶어 진다. 이맘때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많이 걷던 길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이 드는 남산 소월길과 경복궁 서촌방향의 영추문길. 영추문은 이름도 그야말로 가을을 맞이하는 길이다.
자연을 무척 사랑하시고 가까이 곁에 두고 사셨던 부모님 덕분에 어린 시절의 가을은 내장산, 속리산, 주왕산 등등 전국의 이산 저산으로 단풍놀이를 하러 갔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가득하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예쁜 나뭇잎사귀를 주워다가 코팅을 해서 책갈피로 자주 쓰기도 했다. 색색의 나뭇잎 책갈피처럼 따뜻하고 다채로운 색깔의 가을이 늘 좋았다.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며 정원관련된 다양한 책도 읽고, 정원을 테마로 여행도 다녀오고 수업도 듣기 시작을 했다. 그러면서 배웠던 가장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풍은 물이 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색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줄어들고 온도가 떨어지며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여름까지 활발하게 해 오던 광합성 활동도 멈출 수밖에 없다. 나무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떨겨를 만들어 줄기와 잎 사이에서 영양분과 수분이 교류하지 못하게 하여 더 이상 광합성 작용을 하지 못하게 한다. 초록색의 근원인 엽록소는 광합성을 하지 못해 파괴되고 본래 나뭇잎이 가지고 있던 색깔이 드러나는데 이게 바로 우리가 가을에 보는 단풍인 것이다.
결국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준비를 하며 에너지가 소모가 큰 광합성을 포기하고 본연의 색으로 돌아갔다가 겨울이 되면서 그 잎마저도 떨구게 된다.
이 사실을 알고부턴 가을을 맞이해 본연의 색으로 돌아간 나뭇잎을 바라 볼때면 나는 나의 진짜 색깔을 찾았나? 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항상 ‘나’를 찾고 싶었다.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그러나 나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주변 누군가를 따라 해 볼 때도 있었고, 유행을 좇으며 그게 나의 것이라 믿을 때도 있었다. 라캉의 말처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수록 진짜 나와 멀어지고 공허함이 찾아오기 일쑤였다.
색색으로 물들어가는 감나무잎을 바라보다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쩜 나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뭔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일일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여름 내내 혈기왕성하게 해를 바라보며 광합성을 할 땐 모두가 초록빛이듯, 모두가 바라는 욕망을 향해 달릴 땐 알 수가 없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타인의 욕망을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내 마음과 나의 본질이.
그래서 어쩜 인생을 사계절로 나누었을 때 가을 무렵쯤이 되어야 나무들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색깔에 더 가까워지는가 보다.
기원전 470년 전에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한 ‘너 자신을 알라’가 몇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철학의 가장 근본이듯 나 나신을 안다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가을 단풍이 속삭이듯 이야기한다. 너의 가을엔 너도 진짜 색깔을 찾을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