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고 첫 가을을 맞이하며 손꼽아 기다린 것은 바로 감수확이었다. 지금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에 하나가 작은 정원과 단감, 대봉 감나무 두 그루였는데, 평소 감을 그렇게나 좋아했냐? 하면 사실 그것도 아니다. 오래된 감나무들이 지키고 있는 작은 마당이 어딘가 모르게 낭만적이라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감나무 두 그루에 그렇게 많은 노동이 따르게 되는지도 물론 몰랐으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감이 주홍빛으로 익어가는 어느 가을 주말, 기대하던 감수확을 위해 부모님도 오셨다. 전 집주인이 놔두고 간 긴 감수확용 채를 들고선 아빠가 먼저 시범을 보여주셨다. 긴 대 끝에 가지를 꺾는 날카로운 부분이 달려있어, 감이 열린 가지를 꺾어 대 끝에 달린 주머니에 넣으면 성공. 온 가족이 돌아가며 감을 수확하는 게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가을 햇살아래서 함께 감을 따며 기억에 남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들이 먹을 감들은 남겨두고 수확을 했다.
그런데 좌측 편에 있는 단감나무에는 단감이 주렁주렁 달려 두 바구니를 넘게 감을 떴는데, 어쩐지 우측 편에 있는 대봉나무에는 감 수확이 시원치 않았다. 감나무가 아픈 것인지 살펴보았지만 이상 없이 건강해 보였다. 왜 대봉은 감이 시원찮냐 엄마한테 투덜거리니 아마 해거리를 하는 것일 거라며, 이따 막걸리 한 병을 사서 땅에 부어주자고 했다.
해거리를 처음 들어보았다. 귤나무나 감나무 같은 과실수에 과일이 많이 열리는 해와 아주 적게 달리는 해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을 해거리라고 했다. 한 해 열매가 풍성하게 달리면 이듬해 뿌리는 약해져 열매가 적어진다. 다음 해를 기약하며 한해를 쉬어간다. 그렇게 스스로를 보호하며 천천히 성장해 나간다.
해거리하는 감나무를 보며 마음 한편이 울컥했다. 나는 해거리를 해본 적이 있었나? 일을 시작하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렸다. 물론 중간중간 휴가를 쓰고 여행을 다녀오거나하는 일은 있었지만 정말 오롯이 쉼을 위한 시간을 써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당장의 생계도 걱정이었지만 오래 쉬는 것이 불안했다.
나의 대학교 은사님인 김누리 교수님은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우리나라에 만연한 ‘자기 착취’를 이야기한다. 우리나라는 대단히 약탈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놓여있고, 그 속에서 우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착취를 자신의 신념으로 삼고 있다고. 스스로 자기를 착취하지 않는 인간은 불안해하며 끝없이 자기를 착취하는 개인들을 만들어내는 이것이 ‘한국형 착취 향식’이라고 했다.
누군가 나를 감독하지 않아도 내 마음속에 있는 노예 감독관은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하에 끊임없는 경쟁과 생산성 그리고 성장을 강요하며 자기 착취를 멈추지 않는다.
첫 감수확을 하고 나니 해가 짧아지고 날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계절 탓인지 어쩐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거의 6개월 가까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일을 하며 이사를 하고 나니 모든 에너지가 다 소모된 것만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얼른 정신 차리라며 나를 채찍질했을 텐데, 그냥 쉬기로 했다. 진심으로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과 에너지가 생길 때까지 최소한의 해야 되는 것들만 하며 쉬기로. 한 달이 될지, 두 달이 될지 한 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만의 첫 해거리 시간이었다. 충분히 쉬었다. 조급함과 불안함이 찾아올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쉬었다. 쉬는 동안 마음에 묵혀뒀던 지난 일들과 여러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찾아와 괴롭힐 때도 있었지만 시간과 함께 그 또한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렇게 한 육개월 가까이 쉬었을까? 겨우내 앙상해졌던 감나무 가지들에 새순이 돋아날 때쯤 뭔가 새롭게 해보고 싶은 마음들이 찾아왔다. 긴 쉼의 시간 후 새롭게 채워진 느낌이었다.
박노해 시인의 <해거리>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해거리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발아래를 쳐다봐야 하는 법이란다
…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허리 굽혀
땅심과 뿌리를 보살펴야 하는 거라며
정직하게 해거리를 잘 사는 게
미래 희망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라며 ‘
멀리 가고 싶다면 나의 밖이 아닌 안을 바라보아야 한다. 감나무가 열매가 아닌 뿌리를 살피듯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살피며 쉬어 가는 것이 긴 삶을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두 번째 해에는 대봉이 주렁주렁 열리고 단감이 해거리로 쉬어갔다. 단감과 대봉이 번갈아 해를 거르며 나에게 속삭인다. ‘언제든 쉬어가도 괜찮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