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꽃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프리지아를 보면 늘 엄마를 떠올린다. 이른 봄 태어난 엄마는 프리지아 꽃을 정말 좋아하시는데, 그래서 엄마 생일에는 항상 프리지아 꽃다발을 선물한다. 수수한 꽃의 모양에 산뜻하고 우아한 향기가 어쩐지 엄마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5월에 피는 아카시아 꽃은 늘 아빠를 떠올리게 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부모님과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많이 다녔는데,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에 아빠랑 유난히 더 산책을 많이 했다. 꽃잎을 따다 가위바위보 이기는 사람이 잎을 하나씩 떼는 게임도 하고, 꽃의 꿀을 빨아먹기도 하고.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후암동 뒤편 남산 소월길에도 5월이면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는데, 그 달큼한 냄새를 맡으며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게 좋아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이면 부지런히 소월길을 걷고 아카시아 꽃 향기를 맡으며 아빠한테 안부전화를 하기도 했었다.
내가 어떤 꽃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누군가가 어떤 꽃을 보고 날 떠올리면 좋겠다 하는 꽃들이 있었는데, 20대에는 그 꽃이 바로 작약이었다.
스무 살 꿈꾸던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앞두고, 스스로에게 새로운 자아의 멋진 영어 이름을 하나 지어주고 싶었다. 그때 처음 떠오른 것이 바로 작약 꽃이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작약을 꽃다발이나 향수에도 많이 쓰지만, 그 당시에 작약을 떠 올린건 오래된 한국화에서 보았던 겹꽃의 큰 꽃송이가 멋들어지고 화려하게 피어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영어사전에서 작약을 찾아보니 페오니(Peony)라고 했다. 그날부터 런던에서 나는 페오니로 살겠다 다짐을 하고 런던으로 떠났다. 스무 살의 페오니는 정말 거침이 없었다. 많은 경험과 도전을 하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친구들과 떠난 파리여행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살사학원에서 커플이 된 이탈리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즉흥적으로 함께 살사를 추기도 하고, 기타를 메고 비틀스의 고향 리버풀로 혼자 여행을 떠나오기도 하고 왠지 원래의 내 이름으로면 주저했을지도 모르는 많은 일들이 ‘페오니’로는 두렵지가 않았다.
그렇게 이십 대는 페오니로 살았고, 그때 만났던 많은 인연들은 여전히 나를 페오니로 기억하고, 페오니로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십 대에 만난 친구들은 아직도 가끔 작약꽃을 보면 내 생각이 났다며 사진과 함께 안부를 건네어온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 때쯤 내 삶에 작약이 저물고 능소화가 새롭게 피게 되었다. 남편은 미국인임에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페오니라는 영어이름보다 내 원래의 한국이름을 더 좋아했고, 발음이 조금 어설프지만 한국이름을 불렀다. 그때부터 자연스레 페오니라는 이름은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고, 외국계 회사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이 영어 이름을 씀에도 나는 내 고유의 한국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함께 살게 된 후암동 집에서 모퉁이를 돌아 요가원에 가는 108 계단에서 능소화와 처음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오가며 보긴 했겠지만, 능소화와 사랑에 빠지게 된 건 바로 요가원 가는 길 108 계단의 능소화 때문이었다.
보통 꽃들이 화창한 봄 무렵 피어나는 데 반해 아주 쨍한 여름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 능소화는 주황색 꽃들이 탐스럽게 줄기를 따라 주렁주렁 달리며 핀다. 어쩐지 열대에서 피는 히비스커스를 닮은 것 같기도 한데 능소화의 고향은 의외로 중국이라고 했다. 능소화는 초여름피기 시작해 9월까지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꽤 오랜기간 꽃을 피우는데, 폭염에도, 긴 장마에도, 태풍이 와도 요가원 가는 길 늘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여름 내내 의식처럼 요가원 가는 길 능소화 옆에서 함께 사진을 찍곤 했다.
어딘가 모르게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색깔과 모양에 여름 내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몇백 년이 넘게 살아가는 넘치는 생명력까지, 그리고 질 때마저도 쿨하게 꽃송이채로 툭하고 떨어져 그 모습이 어찌나 쿨하고 매력적인지 능소화를 볼 때마다 그 매력에 빠지게 되는 그야말로 '볼매'였다.
능소화(凌霄花)라는 이름은 또 어떤가? ‘업신여길 능’, ‘하늘소’ 즉,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이라는 뜻인데, 여름의 극하고 짓궂은 날씨에도 보란 듯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라 그런 이름을 얻은 것 같았는데, 세상이 모두 아니라고 해도 내 소신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 나에게 능소화는 닮고 싶은 '멋진 언니'같은 워너비 꽃이 되었다.
정원을 갖게 되고 가장 먼저 심은 것도 바로 능소화였다. 꿈꾸던 대로 대문 옆 담장을 타고 올라가 언젠가 담장과 대문에 능소화 넝쿨이 될 수 있게 담장 바로 너머에 심었다. 엄마가 처음 능소화 묘목을 가지고 오셨을 때, 오래된 지팡이처럼 생긴 꼬챙이라 과연 저런 묘목에서 꽃이 필 수 있을까 했는데, 첫 여름부터 엄청난 생명력을 자랑하며 탐스럽게 꽃을 피웠다. 그리고 두 번째 해에 좀 더 자라 담장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벽돌을 달아 담장 쪽으로 자리를 잡아주니 여름 내내 비가와도 해가떠도 바람이불어도 담벼락을 따라 탐스러운 주황색 꽃이 주렁주렁 열렸다.
여름내내 집을 나설때 그리고 돌아올때 나의 워너비 능소화를 보며 생각한다. 나도 능소화같은 사람이 되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