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 Back to the Reality

by Sentimental Vagabond


은현의 Day7


말도 안 되는 아침이다. 눈뜨기 싫다. 하지만 눈을 뜨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싸야 한다. 하지만 조식을 놓칠 수 없으니 호텔 다이닝으로 간다. 점심때쯤이면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미리 아침을 조금 먹는다. 오믈렛 한입 한입이 소중하기만 하다.


전날 밤 미리 호텔에 요청해둔 공항 택시를 탄다. 택시 앞좌석 가운데에는 메리골드 꽃이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다. 발리에서 어딜 가나 메리골드 꽃을 볼 수 있다. 메리골드는 발리 사람들이 매일 아침 기도 의식을 치를 때 사용하는 꽃으로 축복의 의미가 있다. 어쩌면 앞좌석에 놓인 메리골드 꽃은 오늘이 유일하게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차 안에서 기사님에게 이런저런 궁금한 이야기를 많이 물어보았다.



- 발리 사람들은 사원에 사나요?

- 아니요, 사원에 사는 게 아니라 집에 작은 사원을 하나씩 만들어요

- 발리 사람들은 요가를 하나요?

- 발리 사람들을 아침마다 드리는 기도가 곧 요가라고 생각해요

- 그럼 기사님도 아침마다 ‘요가'를 하시나요?

- (어색하게 웃으며) 아니요, 잘 안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안 해요. 점차 사라지고 있죠.


은희와 나는 내심 아쉬웠다, 그들의 신성한 의식이 점점 이어지지 못하는 것, 문득 한국이 떠올랐다. 이건 마치 더 이상 고추장, 된장, 김치를 집에서 만들어 먹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여 더 이상 정말 맛있는 토속 음식을 먹기 힘든 것과 비슷하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전통문화의 사라짐이기도 하지, 이런 멋쩍은 비유를 해본다.


아쉬움에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은희와 나는 발리에서 마지막으로 크게 외쳐 본다. ‘트리마까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본다. ‘사마~사마~’. ‘트라마까시’는 인도네시아 말로 고맙다는 말이고 ‘사마 사마’는 괜찮아요, 별거 아니에요 라는 뜻이다. 은희와 나는 여행 내내 이 두 단어로만 여행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우리가 우렁차게 트리마까시! 하고 말하면, 너무 귀엽고 다정하게 사마 사마라고 해주었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말이었던 거 같은데, 이제 마지막이다.


공항에 들어가니 사람들로 북적인다. 저가 항공을 예매한 탓에, 우리 체크인 게이트는 저 어딘가 구석에 있다. 체크인을 하고 짐 체크를 한다. 매운 소스 러버 은희는 어제 마트에서 이런저런 소스를 샀는데, 병 200ml 짜리라 내심 짐 체크에서 걸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소스를 너무 사랑하는 은희는 자기는 다른 건 몰라도 소스 빼라고 하면 정말 화가 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은희는 결국 화가 났다. 소스를 다 빼라고 했고, 발리에 올 때 아무 문제없던 액체 용기들도 다 빼라고 했다. 은희는 화가 폭발했다. 정말 다시 퍽퍽한 현실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비행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정말 우리는 발리를 떴다.


바로 한국에 도착하지는 않았다. 경유 티켓이라 쿠알라룸푸르에서 15시간 대기해야 한다. 시간이 조금 애매하여 우리는 나가서 밥을 먹고 오기로 한다. 쿠알라룸푸는 공항은 대형 몰 같았다. 실제로 몰과 같이 운영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에 오자마자 현실에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저녁으로 야시장 같은 곳에서 먹자고 하고 차이나타운 쪽이 괜찮다고 생각돼서 그쪽으로 행선지를 잡았다. 그런데 퇴근 러시아워에 걸려서 그런지 차가 많이 막힌다. 그럴수록 은희와 나는 참을 수 없는 극심한 배고픔을 느꼈다. 차이나타운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은희가 갑자기 외친다! ‘어! 난도스다! 저기 엄청 맛있는데!’ 무엇인고 하고 보니 영국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이라고 한다. 영국에서 진짜 맛있게 먹었다고.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파 로컬 음식이고 나발이고 우선 주린 배를 채우기로 했다. 기사 아저씨께 난도스 앞에서 세워달라고 했다. 주문을 빠르게 하고 미친 듯이 먹었다.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발리에서 먹은 조식 외에 없었다.


배불리 먹고 야시장으로 가자고 하고 나왔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와우, 날씨 한번 기가 막힌 타이밍에 구려 지네’ 현실과 거리가 10척이 남았다면 7척까지 다가온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야시장은 높은 천장으로 가림막이 있어서 비는 적당히 피할 수 있었으나 볼거리가 없었다. 남대문에 가도 다 볼만한 물건들이었고, 심한 호객행위 때문에 은희와 나는 금세 지쳤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자고 하고 택시를 부르기 위해 스타벅스로 갔다. 스타벅스에 오니 현실까지 8척까지 온 느낌이다. 와이파이를 잡고 그랩을 불러 다시 공항으로 갔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한국에 갈 수 없었다.


비행기는 새벽 7시 출발이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가 채 되지 않았다. 미치 다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출발 4시간 전에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갈 곳이 없어 헤매다가 2층에 가면 쉼터 같은 곳이 있다고 하여 그리고 향한다. 그리고 노숙자 마냥 바닥에 누워 은희와 나는 잠을 청했다. 하지만 불편한 자리와 새벽 시간이다 보니 추워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계속 이 생각만 들었다. ‘직항을 이래서 타는구나, 환승 이런 젠장, 돈 버는 게 먹고 살기 편하자고 인데, 난생처음 공항에서 노숙을 하는구나'. 몇 번 욕하고 나니까 간신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얼추 시간이 다되어 다시 게이트로 향했다. 들고 있던 캐리어에 갑자기 무게를 재라고 해서 쟀는데 7kg가 조금 넘자 가차 없이 짐 체크인을 하고 오라고 한다. 제대로 잠도 못 자서 정신없는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구시렁대며 구석으로 가서 작은 백팩에 모든 짐을 쑤셔 넣는다. 현실까지 단 1척만 남았다. 스타벅스에서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사고 잠시 쉬다가 온보딩을 하러 갔다. 그런데 짐 체크인이 또 있었다. 은희와 나는 폭발했다. 말레이시아는 그 어떤 이유로든 다시 오고는 싶지 않다. 말레이시아가 우리한테 잘못한 거는 없지만 그냥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가야만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짜증이 조금 나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것들이 다 거슬렸다. 이제 생각해보니 아무 근거 없이 말레이시아를 욕해서 좀 미안하다. 오랜 15시간을 쿠알라룸푸르에서 미적거리며 보내고 마침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진짜 안녕이구나.


6시간 비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다.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인터넷이 잘된다. 카카오톡이 울리고 문자 메시지가 날아온다. 아, 한국이구나. 알 수 없는 안도감과 편안함. 입국 심사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인천 공항의 위대함과 깨끗함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희와 나는 매콤한 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다. 발리 음식 맛있고 좋았으나, 한국 특유의 그 매콤 칼칼한 맛이 너무 그리웠다. 은희와 나는 나오자마자 공항 내 분식집으로 향한다. 우리는 걸신이 들린 것임이 틀림없다. 떡볶이, 순대, 김밥, 쫄면, 라면, 쿨피스까지. 둘이서 이걸 다 먹었다. 아, 한국의 맛. 음식 때문에 외국 장기 투숙은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


은희와 나는 공항철도를 탔다. 콸콸 쏟아지는 인터넷을 즐기며 이것저것 핸드폰을 뒤지고 있는데 갑자기 맞은편에 앉아있는 은희한테 카톡이 온다. 내 얼굴이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내 얼굴. 그러더니 한 장의 사진이 더 온다. 발리에서 내 환한 얼굴.

‘아, 현실 10척까지 도착했구나.’



은희의 Day7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15시간이 넘는 경유 시간이 남아있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떠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독립을 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자 살면서 3개국 6개 도시에서 20번 이상의 이사를 하면서 살았던 나는 '집'이라는 것이 늘 모호했다.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면서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곳이 집’이라는 집에 대한 나만의 개념이 생겼다. 지난 7년간 늘 남편과 여행을 해왔기에, 여행을 함께 하면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함께 있는 곳이 집이니까. 그러나 친구와 여행을 떠나오니 여행이 끝나는 것은 아쉽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안도감과 행복감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리조트의 조식을 배부르게 먹고, 미리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 동안 마주치는 발리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많이 물어봤었는데, 택시기사님이 우리가 마주치는 마지막 발리 사람이 될 것 같아 또 이것저것 떠오르는 생각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차창으로 발리의 풍경들을 마음에 담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풍경에서 메리골드 꽃을 파는 작은 상점들과, 꽃 바구니를 한 아름 들고 가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발리에서는 사원이나 카페의 계단에도, 요가원이나 누군가의 집 앞에도, 택시나 들판에서도 어딜 가나 주황색 메리골드 꽃을 만날 수 있었는데, 신에 대한 발리 사람들의 경배와 정성을 엿볼 수 있었던 이 주황색 꽃이 나에게는 발리의 상징으로 기억이 될 것 같았다.



1시간을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늘 설렘과 아쉬움의 공기가 가득하다. 서둘러 체크인을 하는 찰나 공항 검색대에서 어제 샀던 소스들을 모두 뺏기게 되었다. 올 때는 200ml까지 기내 반입이 됐었는데, 돌아갈 때에는 100ml 반입밖에 안된다고 했다. 발리에서 산 소스들로 남편에게 맛있는 나시고랭을 해주고 싶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된 것 같아 너무 화가 났다. 이렇게 현실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듯했다. 화를 추스르고 좁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그렇게 발리를 떠났다.


저가 경유 티켓을 끊었기에 쿠알라룸푸르에서 15시간 대기해야 했다. 또 다른 도시를 여행하면 되지라며 은현과 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쿠알라룸푸르 시내 쪽을 향하는데 마침 퇴근길 러시아워라서 길이 아주 막혔다. 희뿌연 도시와 교통체증, 이렇게 서울의 일상에 한껏 더 가까워졌다. 차이나타운에 가서 야시장 음식들을 맛보려 했는데, 교통체증으로 시간이 너무 걸렸던지라 배가 너무 고팠다. 차이나타운에 가까워졌을 때 영국에서 너무나도 좋아했던 난도스 간판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난도스에서 며칠 굶은 사람처럼 치킨을 해치웠다.



치킨을 먹고 나와 야시장을 구경하려고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세차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해가 반짝이던 발리의 기억이 벌써 희미해졌다. 시장 한 바퀴를 돌아보고 지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가장 안전지대인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낯선 도시에서 비 맞은 생쥐꼴로 스타벅스에 앉아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랩을 불러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갔다. 비행기 시간이 새벽 일찍 이었는데 아직까지 5시간 이상 남아있었다. 우리는 결국 공항에서 노숙을 하다가 보딩 타임이 다되어 비행기에 탔다. 지친 몸에 아쉬울 겨를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장춘몽 같았던 발리의 시간을 뒤로하고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익숙한 공기와 밀려오는 안도감,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다. 은현과 나는 입국 수속을 마치자마자 공항 내 분식 가게로 가서 늘 그랬듯 사람 수 보다 많은 음식을 시켰다. 너무나도 즐거웠던 여행이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익숙하던 것들이 그리웠나 보다. 오랜만에 먹는 떡볶이와 순대, 김밥, 라면, 쫄면은 너무나도 맛있었다. 익숙한 맛들과 함께 그간 머리와 마음속 한켠에 밀어두었던 여러 가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밥을 다 먹고 은현과 공항철도를 탔다. 밀린 뉴스들이나 이메일 등을 캐치 업하다가 문뜩 맞은편에 앉아있는 은현을 봤는데, 지난 일주일과 다른 모습의 은현이 앉아있었다. 우리는 정말 현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