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현의 에필로그
은희와 내가 발리에 다녀와서 글을 쓰자고 한 것은 다분히도 지루한 일상에 조금이라도 재밌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즐거운 여행과는 다르게 글을 쓰는 건 조금 힘이 들었다. 평소 게으른 내가 꾸준하게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면 현실에 파묻혀있다가도 과거 즐거웠던 여행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조금은 즐거웠다. 그리고 각자의 글을 보며 같은 하루를 보냈지만 다르게 보고, 생각하고 그 와중에 똑같이 생각하는 것들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에는 누가 본다는 생각에 잘 써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었는데, 이 책은 누구를 위한 책이 아닌 오롯이 은희와 나만의 여행 기록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니 부담 없이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자칫 읽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책은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니까. 대체로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은 은희와 나의 지인 들일 것이다. 혹시나 읽다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은희와 나에게 말해주길 바란다. 그럼 구두로 상세하게 설명해줄 테니까.
은희는 매해 초에 그 해에 맞는 키워드를 정한다. 은희는 나에게도 이번해 초에 2019년 나의 키워드는 뭐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2019년 다 지나갈 때쯤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2019년의 키워드는 ‘은희'였던 것 같다.
지루한 일상에 매일 아침 카톡으로 하루를 반겨주는 은희, 삶의 소중함과 그 여정에 대해 귀 기울여주는 그녀,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듬어 주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게으른 내가 이렇게 끝까지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옆에서 페이서가 준 그녀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내 삶에 새로운 계기가 되어준 그녀, 그녀와 함께 2019년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은희의 에필로그
올해 초 회사 워크숍으로 은현과 함께 LA에 다녀왔다. LA의 어느 한 바에서 은현에게 물어봤다. 은현님을 움직이는 힘은 뭔가요? 은현은 1초도 주저하지 않고 "Fun"이라고 했다. 은현의 슈퍼파워가 Fun이어서인지 몰라도, 은현과 함께했던 LA도 발리도 인생에서 했던 그 어떤 수많은 여행보다 재밌는 여행이었다. 늘 조금 심각하고 정제된 나를 무장해제시키고, 여행내내 참으로도 많이 웃었다.
사람은 모두 자기를 움직이는 동력이 다르다.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늘 '사랑'이었다. 은현과의 두 번의 여행이 끝난 뒤 내 인생의 키워드에 사랑과 함께 'Joy'를 하나 더 추가시키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나의 이름 은희의 '희'도 '즐거운, 기쁠 희'였다. 할아버지가 원래 내 이름을 지을 때 '빛날 희'로 지으셨는데, 동사무소 직원의 실수로 '기쁠 희'가 되었다. 한자를 바꾸려면 복잡한 개명신청 절차를 해야 한다고 해서, 부모님은 빛나며 사는 것보다 기쁘게 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며 그냥 '기쁠 희'로 살라고 했다.
그렇게 잊고 있던 나의 즐거움을 떠올리다 보니 생각으로 미루어 두었던 것들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바로 은현과 함께 여행기를 쓰는 것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즐거웠고, 여행을 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러나 여행에 돌아와서 은현과 함께 여행기를 쓰며, 비슷하게 또 다른 생각들을 했었던 여행을 추억하는 즐거움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여전히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은현과 나는 또 다른 여행을 기다리고 있다. 다가오는 겨울 나는 남편과 미국 서부 로드 트립을, 은현은 친구들과 호주 로드 트립을 떠나기로 했다. 비슷한 듯 또 다른 이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한번 더 우리만의 방식으로 각자가 로드트립을 통해 길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공유하기로 했다. 여행이 끝나고도 우리의 일상은 계속되고, 그 일상 안에서 또 작은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내 삶에 잊고 있었던 즐거움을 일깨워 준 그녀, 그녀와 함께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