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7장 기도는 살고 싶은 자의 울음이다
욥은 이제 친구들을 향해 말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향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간청도, 찬양도 아니다.
그것은 거칠고, 도발적이며, 때로 불평처럼 들린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은 진실한 기도가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욥기 7장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힐난하는 장이라기보다는 진실한 기도의 장이다.
"땅 위 사람에게는 고된 일이 있지 않은가?
그 한평생이 날품팔이의 한평생 같지 않은가?" (7:1)
그는 삶을 지루하고 허무한 고된 노동에 비유한다.
한평생이 날품팔이의 생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기다림의 소망조차도 없는 날들,
밤마다 찾아오는 뒤척임의 시간들,
하루하루 불안한 삶,
회복되지 않고 더욱 더 깊어지는 상처.
욥은 이렇게 말한다.
"내 한평생이 베틀 북보다 더 빨리 지나가고,
희망 없이 끝나려 하네." (7:6)
삶은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희망은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 말을 건넨다.
“나 하나 죄를 지었다고 한들,
나 하나 이렇게 되었다고 한들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관심이 많으십니까?”
그의 기도는 도발적이다.
하지만 그의 도발은 등 돌림이 아니라, 머뭇거림이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다.
욥은 하나님께 묻는다.
"사람이 무엇이라고 그를 크게 만드시고,
그에게 마음을 두십니까?
아침마다 그를 살펴보시고,
순간마다 그를 검증해 보십니까?(7:17,18)
이 질문은 시편 8편의 찬미를 반어적으로 뒤집는다.
시편 8편의 “사람이 무엇이기에”는 경탄의 찬양이지만,
욥기 7장의 그것은 “왜 나를 이토록 쳐다보시느냐”는 피로의 항변이다.
시편 8편에서는,
"사람이 무엇이라고 주님이 그를 기억해 주시며,
인간이 무엇이라고 주님이 그를 돌보아 주십니까!"(8:4)라고 하지만,
욥은,
"사람을 지켜보시는 주님!
나를 주님의 과녁으로 삼으신 까닭이 무엇입니까?"(7:20)라고 항변한다.
욥은 하나님에게 계속 항변한다.
"왜 나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나의 잘못을 치워 주지 않습니까?
이제 내가 누워 흙으로 돌아가면,
주님이 찾으셔도 내가 더는 있지 않을 것입니다."(7:21)
이 기도는 무례한 기도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이어가려는 최후의 기도다.
리처드 로어(Richard Rohr, 1943~)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잡을 수도, 통제할 수도, 설명할 수도, 바꿀 수도,
심지어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이 적어도 한 번은 있어야 한다.”1)
지금 욥은
잡을 수도,
통제할 수도,
설명할 수도,
바꿀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살고 싶어 하는 자의 울음이요, 탄식이다.
욥이 하나님께 항변하고, 탄식한다는 것은
여전히 그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기도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기도란 무엇인가?
헨리 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은
『마음의 길』이라는 책에서 “고독과 침묵은 기도가 행해지는 자리”(71쪽)라고 했다.
또한,
“기도의 사람이란,
숨겨진 것을 드러내고, 구체적으로 잡지 못하던 것의 실체를
파악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2)
진실한 기도란 때때로 단정한 언어가 아니라,
거칠고 뒤엉킨 언어로 들리는 절규다.
침묵이 깊을수록, 그 침묵을 뚫고 나오는 말은 더욱 절박하고 참되다.
욥은 이제 고독과 침묵의 기도를 지나
이제 자기 안에 숨겨진 탄식을 숨기지 않으면서
기도의 사람으로 서는 것이다.
욥처럼 특별한 곤경에 처해 있던 사람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는
고통 중에 이렇게 기도했다.
“주 하나님,
지독한 불행이 나를 덮쳤습니다.
근심, 걱정이 나를 질식시키려 합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하나님, 자비를 베푸시고 도와주소서.
당신께서 주시는 짐을 지도록 힘을 주소서.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소서......”3)
욥은 죽고 싶다 말하지만, 죽기를 구하지는 않는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말을 한다.
그 말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
아직도 신앙의 마지막 줄기는 꺾이지 않고 이어져있는 것이다.
기도는
살고 싶은 자의 울음이고,
무너지지 않으려는 말의 몸부림이다.
욥의 기도는 본 회퍼의 기도처럼 세련되지 못하다.
도발적이고 거칠다.
그러나 그 말은 하나님을 등진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자의 부르짖음이다.
신앙은 질문하지 않는 침묵이 아니다.
신앙은, 답을 듣지 못해도 침묵을 뚫고 말을 거는 끈질긴 생존의 언어다.
주:
[1] 리처드 로어, 『위쪽으로 떨어지다』, 이현주 옮김, 국민북스, 2018, p.117.
[2] 헨리 나우웬, 『상처입은 치유자』, 최원준 옮김, 두란노, 2019, p.68.
[3] 본 회퍼,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김순현 옮김, 복 있는 사람, 2021,p.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