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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Son Apr 28. 2024

죽음과 후회: 내 몸이 아닌 내 몸

어른용 성장

전제: 죽음이 다가올 때 후회도 따라온다


후회하기 전에 감사하라.

상황: 죽고 싶은데 엄마가 메시지를 보냈어요


SNS에 올려진 글이었다. 아는 이는 아니지만 우울증으로 오래 고생했고 이제 좀 편해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 '딸,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생활비에 보태라며 돈을 보내신 어머니의 문자에 망설여진다는 내용.


'제가 죽으면 엄마가 많이 슬퍼하실까요?'


많은 댓글들이 있었지만, 내게는 그저 꽉 막힌 한숨만 느껴졌다.


현상: 자식의 몸이 상하면 부모의 죄책감으로 돌아간다.


내 친가 쪽은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그 안에서도 40~50대에 일찍 떠나신 사촌 형님들이 많다. 한창 일할 나이였고 가장이었으며 15년 이상 일하던 회사에서 비로소 인정받게 된 그분들은 모두 거짓말처럼 5~6년 사이에 연달아 떠나셨다.


"5년만 더 살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


한 사촌 형님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찾아간 내게 이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형제 중 맏형님 또한 암으로 떠나셨다.


두 아들을 잃은 큰 아버지는 당시 90세이셨다.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마을에서 공부 잘하는 수재로 유명했던 큰아버지는 언론사 기자로 활약하시다 정권의 변화로 모든 기회를 잃은 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한 많은 분이었다. 하지만 큰아버지를 알고 지낸 그 모든 시간 중에서 그날, 큰 형님의 장례식장에서 본 그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황망했다.


빈소가 아닌 복도의 회색빛 쇠로 된 의자에 앉아 계실 때의 그 표정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려웠다. 혹여나 내가 사고로라도 먼저 떠나는 상황이 생긴다면 내 아버지, 어머니의 표정이 저러실까?

웨이트를 열심히 한다고 무리하게 높은 무게로 운동을 하다 허리 디스크가 터졌을 때, 옥수역 근처 병원에서 진단받고 나온 날, 어머니는 지하철을 기다리다 울음을 터뜨리셨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구나. 자식의 몸이 상하면 부모의 죄책감으로 돌아가는구나. 이후 6개월의 시간 동안 누워서 생활하던 내게 매 순간 이 생각이 콕콕 박혔었다.


부모가 되지 않은 내가 부모의 심정을 어찌 알겠는가. 다만 지켜봐 온 부모님들의 반응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려 할 뿐. 먼저 떠난 자식의 죽음을 힘없고 희망이 적은 생의 끝자락에서 매일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 건 부모로서의 최악의 상황이 아닐까 싶었다.

 

생각: 떠난 이와 남는 이, 모두를 위한 선택은 현재에 있다.


"엄마?"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의 마지막 화에서 자살했던 주인공은 어머니의 몸으로 환생한다. 각종 사건, 사고로 일찍 죽었던 이전의 환생들과는 달리 주인공은 어머니의 몸에서 노화로 인한 죽음의 순간까지 쭈욱 살아간다. 아들의 시체를 확인하는 순간,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걷는 순간보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은 아픈 무릎을 이끌고 등산을 해 산 정상에 올랐을 때다. 끝까지 살아달라 했던 엄마의 말을 지키기 위해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걸 깨달았으니까.


분명 사는 건 쉽지 않다. 욕망이 변화를 바라게 만들고 그 변화를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희망을 품고 실천을 감행하다 좌절도 한다. 그러다 욕망이 사라지면 삶의 의미마저 서서히 잦아든다. 이 모든 과정에서 혼자는 두렵고 함께 있던 가족들과의 의미 있던 시간은 점차 사라진다.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다시 처음의 SNS의 글쓴이에게로 돌아가보자. 사실 외부의 다른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없어 보였다. 살과 피로 연결되어 시간이 다진 관계,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 진짜 그 의미를 확인하는 건 떠난 이와 남은 이의 몫일뿐이니까.




가끔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이 생의 의미가 뭘까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내 결론은 '일단 살자'가 되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제사도 챙겨 지내는 그 시기까지는 일단 살자. 그 이후에는 또 다른 의미 있는 관계로 채워져 있을 수도 있고, 생각지 못한 삶의 이유로 삶이 더 풍족해져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오늘 나를 위해 커피 한 잔을 빈 잔에 채워주고 절에 가시는 어머님을 차로 모셔다 드리고. 작고 작은 순간순간에 집중하자 생각하며 실천한다.


그러다 보면, 아 나 그래도 참 사랑 많이 받고 살았지라고 안도할 수 있는 순간도 올 거라 생각한다.


지금 나를 웃게 하는 이, 곁에 당연하듯 머물러주는 이들에게 어떤 웃음을 안겨줄 수 있을까.

날씨 좋은 일요일에 적절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오늘 행복해지는 선택을 제안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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