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용 성장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
벤자민 프랭클린
나이가 들수록 말로 꺼내 놓을 기회가 급격히 줄어드는 마법 같은 말이다. 마법 같다는 표현을 덧붙여본 이유는 상대 이성의 반응이 ‘느닷없냐'라는 환한 웃음이 많았기 때문이다.
3년을 만나며 결혼을 이야기하던 한 친구는 처음부터 단란한 가정을 빨리 꾸리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난 데릴사위처럼 그녀의 어머니가 마련해 준 집에서 함께 하는 다양한 상황 속 존재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린 두 딸과 아내를 두고 전국을 다니며 집을 지으며 산다고 했다.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는 오랜 시간 보험 영업 등을 통해 직접 두 딸을 먹여살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그 아버지의 부재’를 채워줄 역할을 바랐고 우리가 만들 미래에 나의 의견을 확인하는 여유를 보여주질 못했다. 많이 사랑했고 지키고 싶은 인연이었으나 결국 우린 헤어졌다.
그런데 그 뒤로 만나는 이성들은 많은 경우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해온 이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비슷한 결핍(?)에 대해 내 역할과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는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슷한 맥락을 경험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또 관심을 받았다.
'안아봐도 돼?'라는 나의 질문에는 늘 용기가 필요했다. 관계의 시작보다 지속할 수 있을까의 불확실함에 대한 내 나름의 한 발자국. 상대가 내게 바라거나 기대하는 게 무엇일지 확인해 보고자, 내가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내가 찌그러지지 않고 내 부모님의 자식으로서 당당하게 임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고민해서 꺼내보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팔을 벌린 부모가 자식에게 다가설 때의 ‘안아주다’는 연인 관계를 상상하는 내게는 적절한 표현으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낯설고 어색한 순간이 예상되지만 차분하게 가만히 안아보는 시도는 적어도 서로의 호흡과 신체의 온기를 함께 확인해 이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신호와 같았다.
사랑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선택하는 순간들로 계속해서 채워지는 상태, 그게 관계라 할 수 있다.
작가 맨디 렌 카트론은 ‘사랑에 빠지는 건 쉽습니다’라는 제목의 TED 강연에서 1997년 아서 아론 박사가 공개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친해질 수 있을까’를 주제로 다룬 한 사회 실험에 관심을 가졌었다고 이야기한다. 해당 실험에서 제시된 개인적인 생각과 가치관을 확인하는 질문 리스트들을 들고 그녀는 한 남성과 직접 실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다는,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기사를 썼고 해당 기사는 어마어마한 바이럴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그녀는 기사의 유명세만큼 대단히 많이 아래의 질문을 몇 개월간 지속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아직 사귀나요?”
그녀는 사람들은 사실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 보다 ‘어떻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자신의 관계가 행복한 결말이길 바란다는 고백으로 강연을 마무리한다.
관계의 시작은 많은 경우 빠져들고 설렌다. 하지만 관계의 지속은 부딪히고, 미치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다가 안정감을 확인하고 정신을 빼앗기는 과정의 반복과 같다. 사랑과 결혼을 표현하는 유명한 단어 중 ‘미친 짓’이 우리에게 익숙한 건 나름의 실체적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한 번 안아봐도 돼요?’는 각오를 담는 조용한 버전의 ‘아자아자’나 ‘화이팅’과 비슷한 점이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주장한다.
‘안아줄까?’와 ‘안아봐도 돼?’,
오늘 옆에 머무는 이에게 둘 중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고민해 보는 걸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