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an Son Apr 14. 2024

거절의 역할: 30분만 더 기다려줘

어른용 성장

전제: 현실 속 거절, 해봐야 는다.


죄책감 없이 거절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인생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앤드류 매튜스


상황: 나 지금 미팅 중이라 30분만 더 기다려줘


20분 일찍 도착한 상황을 알린 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받은 메시지였다. 심지어 같은 카페 내 다른 층에서 미팅 중이라 하니 혹여나 내가 보이면 방해가 될까 싶어 일단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래, 끝나면 알려줘'라는 답을 보낸 지 몇 분만에 다시 미팅이 끝났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날 만남은 당시 진행 중이던 연구 주제 관련해 몇 년을 알고 지낸 한 친구의 일상적인 경험을 듣고자 내가 제안한 자리였다. 그렇게 곧이어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고 윗 층으로 올라가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얼버무린 답변들. 반응에 따라 최선을 다해 질문을 했고 그렇게 다소 소극적인 반응에 맞춰 대화를 마쳤다. 시간 내서 응해준 점에 감사를 다시 한번 전하고 돌아 나왔고 이후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 그 친구는 사실 그날의 대화가 불편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제야 그날의 모든 어색한 순간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현상: 배려가 배려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거절은 사실 일종의 슈퍼파워와도 같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들이 발생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내달려야 하는 순간, 숨을 돌려야 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나마 작게라도 자신을 위한 선택권을 선물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분을 먼저 챙기기

만약 그 친구가 약속이 확정되기 전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면 약속 시간까지의 불편함으로 혼자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직접 만나 대화를 하는 동안 사전에 문서로 공유된 나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자신이 내어놓는 대답에 대한 조정을 시도하느라 고생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들은 바에 따르면 이미 그 친구는 본인만의 사업을 구체화하거나 회사 업무, 각종 모임들과 운동만으로도 바쁘게 삶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와중에 그 한 시간가량의 대화가 그렇게 부담이 될 정도였다면 잠깐의 부담을 마주하더라도 거절을 하는 게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임이 분명해 보였다.


상대를 위한 배려로서의 거절

우선 나는 당시의 일정을 위해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이미 몇 년 전에 음주 관습에 대해 조사하던 낯선 나를 자신의 홈파티에 초대해 적극적이고 흥미로운 태도로 대화에 참여해 줬던 친구였기에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그 자리에 가기로 결정했던 배경마저 있었다. 그렇기에 더 그 친구의 시간을 소중하게 대하려 더 이른 시간에 사무실을 나섰고 일찍 도착한 약속 장소에서 질문의 맥락을 더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화에 임한 상대의 불편함만큼 조사자로서 내가 확인할 수 있던 내용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그 친구가 배려라 판단했던, 거절을 하지 않기로 한 그 결정이 곧 서로에게는 불편하고 소득 없는 시간의 방아쇠가 되었다.

 

생각: 어려운 대화 속 '나'의 주체적 역할에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Difficult Conversation의 저자이자 하버드 로스쿨에서 협상 전략을 가르치는 더글라스 스톤은 어려운 대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가 경험하는 몇 가지 Blind Spots이 있음을 알려준다.


A. 동일한 현실에 대한 다른 인식

보통 우리 자신은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상대방도 같은 생각으로 대화에 임함을 뜻한다. 스스로가 문제라 생각하지 않기에 자신의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상대방 또한 자신의 입장과 의견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으로 서로 마주하는 게 실제 대화가 이루어지는 현실이다.


B. 의도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가정 

우리는 종종 어려운 대화를 시도할 때 상대방의 의도를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확인되지 않은 의도는 상대의 마음속에만 존재하기에 스스로 자신의 의도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 한 대화에 있어 오해가 발생하는 씨앗이 될 수 있다. 


C. 감정을 가리는 감정적 표현 

너무 열정적으로 대화에 몰입한 나머지 적절한 의사소통 능력이 저해되는 상황이 있다. 특히 매우 화가 난 상황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말을 경청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솔직한 감정 표현은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때문에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D. 비난에의 집중 

갈등을 겪을 때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누가 나쁜 사람인가? 누가 실수를 했나? 누가 사과해야 하는가? 누가 고집을 부리고 분노할 자격이 있는가? 비난에 집중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요한 조치를 취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결국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들을 참고해 당시의 나와 내 친구가 고려해 보았으면 더 좋았을 선택들은 다음과 같다. 


- 안전한 대화 만들기

당시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했다 판단했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은 더 일어나지 않은 거절의 상황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공유할 수 있는 대화의 과정을 제안하는 선택의 기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서로의 목적을 포용하며 상호 존중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서로가 처한 당시의 상황에 대해 한번쯤은 명확하게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경청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한 다음 이해받으려고 노력하라'는 말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문구다. 답변을 앞두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조금 더 일찍 발견할 수 있도록 그 친구에 대한 조금 더 개방적이고 솔직한 호기심으로 대화에 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 'I' message의 활용

'30분만 더 기다려줘'라는 그 친구의 문자에 대해 나는 '그래 끝나면 알려줘'라고 답했다. 그 친구는 30분이나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내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던 부분에서 '혹시 화가 났거나 불편한가'라는 상상을 했을 수 있다. 나는 성격상 그러한 상황에서 따지고 묻는 건 감정만 서로 상할 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는 편이라 내 감정을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다. 약속 시간은 내게도 보통 업무가 종료되는 시간이었고 상대가 친구라는 점에서 '뭐 그럴 수 있지'가 기본적인 내 입장이었다. 


하지만 당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부담 없이 기다릴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조금 더 명확하게 밝혔다면 이미 불편한 마음으로 약속을 지키려 나와 있는 그 친구에게 '불편한 상황'에 대한 추가적 상상을 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상호 기여에 대한 자문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날의 만남과 집에 돌아온 뒤 나눈 메시지 대화는 실은 별 일 아닐 수도 있는 당시의 상황 속 나에게 생각보다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려 노력을 한 건 분명했고 그럼에도 서로가 마냥 편하지는 못한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후 그 친구를 만난다면 예방의 차원에서라도 한 번쯤은 당시 우리가 함께 만든 상황에 대해 서로 어떻게 기여를 했는지 비난이 아닌 공유를 해보고 싶다.


이전 05화 관심 없는 관심: 나는! 나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