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ld Defaults
스마트폰 잠금화면에 ‘속보’ 두 글자가 뜬다. 주가, 환율, 전쟁, 바이러스, 그리고 곧이어 해명과 반박, ‘팩트체크’가 꼬리를 문다. 속보는 분당 320회 쏟아지지만 우리는 그중 단 한 건도 끝까지 읽지 않는다. 2023년, 로이터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서 “뉴스 알림을 열자마자 닫는다”라고 답한 사용자는 56 %였다. 정보는 과잉이고, 신뢰는 고갈이다. 믿을 대상을 고르기보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쪽이 에너지를 덜 쓴다. 이 피로와 불신의 순환 고리는 위기를 증폭시킨다. 합리적 의심을 다시 작동시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뉴스 신뢰도 사상 최저선
지난 10년, 세계인의 언론 신뢰도는 곤두박질쳤다. 2024년 기준 47개국 평균은 38 %. 팬데믹 첫해였던 2020년 44 %에서 해마다 1~2 % 포인트씩 떨어졌다. 미국 32 %, 프랑스 27 %, 일본 40 %. 민주주의 수준이나 GDP와 상관없이 정보 회의주의가 만연했다. 학자들이 지목한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디지털 플랫폼이 성향별 ‘맞춤 헤드라인’을 배달하며 공동의 사실 지대를 잘라냈다.
둘째, 24시간 뉴스룸 경쟁이 속도를 신뢰보다 우선시했다.
셋째, 정치 세력이 언론을 ‘우리 편’과 ‘가짜 뉴스’로 양분하면서 매체 자체가 정파적 레이블이 됐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무엇이 사실인가'가 아니라 '누가 내 편인가'를 먼저 묻게 되었다.
뉴스 회피(News Avoidance)는 더 이상 소수 현상이 아니다. 옥스퍼드 대학 연구팀은 피험자 100명에게 하루 24개의 ‘중요 뉴스’ 알림을 보냈다. 7시간 내 72명이 알림을 전체 무음 처리했다. 참가자들은 “내용보다 반복 횟수 때문”이라 답했다. 이는 학습된 무기력이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안 보는’ 편을 택하는 역설. 기업 PR 팀이 '좋은 이야기라도 세 번 이상 반복하면 노이즈'라고 경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리에서 본 진실의 대립
2025년 봄, 서울 광화문·부산 서면·대구 동성로에서 거리 인터뷰를 진행했다. 집회 관련 기사들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여 주며 “믿을 만한가?”를 물었다. 응답자 중 22 %는 “전혀 믿지 않는다”, 37 %는 “또 다른 출처를 더 봐야 한다”, 나머지 41 %는 “언론사에 따라 답은 정해져 있다”라고 답변했다. (총 49명, 10~70대의 전 연령 대상) 가장 뚜렷한 반복 패턴은 '내 편을 찾고자 정보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이는 뉴스 기사를 넘어 보다 날 것의 현장의 소식을 전하는 유튜브 채널 및 소셜 플랫폼 내 포스팅에까지 닿아 있었다.
이 같은 태도가 보다 분명히 확인되는 지점은 포스팅 내 댓글의 영역이었다. 응답자의 62 % 가 '기사보다 댓글 확인이 중요하다'라고 답했고 이는 심지어 자신들과 다른 입장의 기사나 포스팅에서도 댓글 영역은 자신들의 입장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전쟁터로 경험되고 있었다.
이처럼 사실에 추구 대신 분노·조롱·조급함이 먼저 소비되는 구조가 확인되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느낀 실감은 언론을 포함한 관련 정보를 향한 낮은 숫자의 신뢰율보다 훨씬 극단적으로 양분된 분위기였다. 이는 마치 깨진 거울 앞에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진실을 택한 채, 나머지는 외면하는 상황과 같았다. 서로가 스스로를 진실의 대표자로 칭했고 상대의 의견은 가짜로 선을 그었다.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무너졌나
인류 역사에서 사회 구성원 간의 사실에 대한 보증은 크게 세 가지의 기준으로 확인된다.
- 텍스트: 활판 인쇄 이후 '글로 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검증을 대신해 왔다.
- 제도: 법원, 학회는 복잡한 절차를 통과한 기록만 공식적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 사회: 방송과 교과서는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노출이 되는 시스템을 통해 '거짓이면 이렇게 퍼질 리 없다'는 집단 확신을 보증해 왔다.
하지만 이제 디지털 플랫폼이 개인에게 정보의 발행 권한을 공개적으로 제공하고, 이에 따라 제도는 더는 절차를 독점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판결문, 헤드라인을 '면책 논리'로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의 선택이 틀렸을 때에는 '언론을 믿었을 뿐'이라는 책임 전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합리적 의심을 포기하고 '보증 쇼핑'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이유다.
AI의 팩트체크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책임 공백의 현실
생성 AI는 최근 3~4년 사이 사용자 개개인의 업무 및 일상에 빠르고 광범위하게 스며들었다. AI를 통해 정보를 취합하고 확인하는 경험은 이제 당연한 삶의 일부가 되었고 우리는 역으로 AI가 정보에 접근하고 다루는 방식에서 현재 경험 중인 진실에 대한 책임 공백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AI 시스템은 ① 주장 추출 → ② 근거 수천 건 크롤링 → ③ 문맥·일치도 스코어링 → ④ 사실/거짓/불충분 분류 → ⑤ 근거 하이라이트를 출력한다. 속도는 인간의 수백 배지만 기계는 책임지지 않는다. 완벽한 오차율 0.1 % 라 해도 거짓이 남긴 비용을 부담할 주체는 인간이다.
때문에 우리는 해당 정보들을 현실에 적용하거나 공유하기 전 다음의 질문들을 필요로 한다.
● 왜 이 정보를 믿어야 하는가
● AI가 찾은 반대 근거를 지울 것인가, 내 내러티브를 수정할 것인가?
● 최종 정보 공유 시 잘못된 정보로 확인되었을 때 해당 책임을 내 이름으로 남길 각오가 되어 있는가?
누군가 트위터에 280자를 올린다. 3분 뒤 팔로워 12만의 인플루언서 셋이 동시에 리트윗 한다. 7분이면 '다들 보고 있다'는 배너가 뜨고, 소규모 계정 수백 개가 복사·붙여 넣기를 반복한다. 12분째엔 #핫토픽 해시태그가 생성되지만 정정 기사는 아직 제목도 없다. 해당 MIT Media Lab 실험에 따르면 초기 10분 안에 인플루언서가 리포스트 하면 도달률은 진위와 무관하게 22배 증가한다고 한다. (2024 Rapid Rumor Cascades)
이 같은 '정보의 눈사태 효과'는 4단계로 진행된다.
1. 시드 노드 : 선점 시간이 전부다.
2. 얼리어댑터 : 팔로워 10만 이상 계정 3~5개가 붙으면 도달률 70 % 가 결정된다.
3. 밴드왜건 : 플랫폼이 ‘인기 급상승’을 붙이면 다수가 사실 확인 없이 공유한다.
4. 록‑인 : 반박이 등장해도 초기 게시물보다 범위가 좁아 묻힌다.
그렇게 이용자들의 첫인상은 확증 편향으로 굳혀지기 쉬워진다.
2013년 11월, '뉴욕증시 조기 폐장'이라는 오보 트윗 한 줄이 이 과정을 증명했다. 게시 후 18초 만에 알고리즘 매매가 반응했고, 다우 지수는 0.8% 하락했다가 5분 만에 회복했다. 정정 속도가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동안 시장은 그 몇 분 사이에 수십 억 달러가 나갔다가 되돌아온다. 진실 여부보다 '누가 먼저 말했는가'가 가격을 움직이는 세상이다. 이를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이유는 정보의 눈사태 효과가 '거짓 정보'에만 작동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이든 루머든 초기 증폭 구조가 같다면 파급 효과도 비슷하다. 따라서 대응 전략의 초점은 내용이 아니라 속도 차단에 맞춰져야 한다. 빠른 확산을 30분만 지연해도 밴드왜건 단계 진입률이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다수 연구의 결론이다. 정보 과부하 시대에 진실을 지키려면, 폭포처럼 쏟아지는 속도를 산사태 앞 둑처럼 조금이라도 늦추는 것이 첫 번째 방어선이다.
미얀마 쿠데타와 해시태그 봉쇄
2021년 2월 1일 새벽, 미얀마 군부는 수도 네피도를 장악하며 인터넷 게이트웨이를 차단했다. 시민들은 VPN으로 페이스북 라이브에 접속했지만 #WhatsHappeningInMyanmar 해시태그는 30분 만에 봉쇄됐다. 대신 ‘평온한 거리’ 영상이 바이럴 됐고 BBC·CNN·NHK가 이를 인용했다. 실제 총격 사망 소식은 9시간 뒤 인권단체 트위터 계정에서 처음 나왔다. 속도 우위가 사실성을 압도한 전형이다.
생성 AI 딥페이크 선거
2024년 인도 총선을 앞두고 한 주지사 후보가 상대 후보의 폭언 영상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나중에 확인하니 음성·얼굴 모두 생성 AI였다. 인도 선관위가 삭제 명령을 내렸을 때 조회 수는 이미 350만 건. 같은 해 슬로바키아, 아르헨티나, 멕시코에서도 비슷한 조작 영상이 퍼졌다. 확산 속도 > 정정 속도 법칙이 자유 민주주의의 인프라를 좀먹고 있다.
기업 전략에 번진 정보 비용
1. Bud Light 불매 사례
2023년 4월 1일,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베이니에게 보낸 한정판 캔 사진이 SNS에 퍼졌다. 72시간 만에 ‘#BoycottBudLight’ 노출은 7,500만 회를 돌파했고, 앤 하이저부시는 성명을 10일 늦추다 4월 14일 주가 –13 %를 기록했다. 한 달 새 시가총액은 70억 달러 증발. PR 실패라기보다 의사 결정 지연 비용이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2. 대만해협 봉쇄 루머
2024년 8월 3일 오전 9시 (TST), ‘해협 전면 봉쇄’라는 익명 트윗이 게시되자 로이드 해운 보험 중개인들은 3시간 내 War‑Risk Premium을 0.07 %→0.22 %로 세 배 인상했다. 중국 국방부의 부인 성명이 나온 것은 21시간 후였다. 보험료만 2,100만 달러가 추가 청구된 뒤였다. '가짜면 환불'이 아닌 '진짜면 파산'의 로직이 시장을 선제적으로 움직인 셈이다.
텍스트·제도·사회 세 겹 보증이 느슨해진 시대다. 기계 학습이 정보 검증 과정의 속도를 수천 배로 끌어올려도 진실 확인에 대한 책임까지 짊어져 주지 않는다. 그러니 남은 질문은 하나다.
"당신은 왜 그것을 믿는가?"
1장에서 확인한 정상성 편향이 ‘경보를 무시’하게 만들었다면, 이 장의 정보 피로는 ‘사실 확인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세상이 빨라질수록 우리는 더 천천히, 더 책임감 있게 의심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 진실의 희소성이 높아진 만큼, 그것을 놓쳤을 때의 대가도 커지기 때문이다.
Source: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23
Shao, Y. & Aral, S, Early Amplification in Rumor Cascades, MIT IDE Working Paper
Vosoughi S., Roy D., Aral S. (2018), The spread of true and false news online
A/HRC/57/56: Situation of human rights in Myanmar
Anti-trans backlash against Bud Light has executives on the hot seat. What’s going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