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말 못 할 사정들이 많다.
겪고 있는 어려움의 종류도 그 정도도 다르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관점도
처리해나가는 방식도 제각기 다를 테고.
이런저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처리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살다 보면 사람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있다.
그럴 때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정신이 멍하고 허탈해진다.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이 죽어가는데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없을 때 그런 심정일 것이다.
비단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온갖 절박한 상황 속에서 마땅한 답이 없을 때는
낙심과 절망 속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끝이라 생각되는 어떤 상황이라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 수도 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함으로 누군가에게 또는 무언가에게 매달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람이 '이미 죽었다'라고 한다면,
그것도 죽은 지 며칠이나 지나서 썩은 냄새까지 난다고 하면 어떨까?
실낱같은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고,
따라서 간절히 매달릴 필요조차 없는 상황 말이다.
새벽예배 말씀 속에서 정확히 그런 상황을 마주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다.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다.
누이들은 그가 병들어 죽어갈 때 예수님이 오시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예수님은 전갈을 받고도 이틀이나 꼼짝하지 않으시더니,
결국 그가 숨을 거둔 지 나흘 째 되던 날 누이들에게 오셨다.
마음이 상하고 괴로운 상황이다.
요한복음 11장 말씀 전체를 살펴보았다.
예수님을 만난 누이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원망이 동시에 전해졌다.
진작 오셨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왜 이제야 오셨냐는...
이 말은 다시 말하자면,
심장이 멎고 숨이 넘어간 지금은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인식이었다.
그것은 또한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믿음이었다.
"돌을 옮겨 놓으라."
비탄에 젖어 있는 누이들과 웅성대는 무리들을 향해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 냄새까지 나는데 어쩌시려고 그러는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는 예수님의 단호한 음성에
사람들이 굴을 막고 있던 돌을 옮겼다.
"나사로야 나오라."
굴을 향해 예수께서 큰소리로 외치셨다.
그랬더니 죽은 자가 걸어 나왔다.
은혜와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이런 기적은 사실 낯설지 않다.
말씀으로 천지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내가 믿기에
이것 또한 그냥 믿어졌다.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 새벽예배 가운데 새롭게 다가온 것은 이런 기적의 풍경이 아니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돌을 옮기는 것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마음 가운데 밀려왔다.
누가 날더러 죽은 사람을 살리라고 하는가?
그저 돌을 옮기라고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내어 맡기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해내는 것.
뭐랄까, 작은 순종과 성실함?
난 맹물을 마실 때마다 기가 차서 혼잣말을 한다.
이게 포도주가 되었다니 말이 되는가.
그런데 그렇게 하셨다.
그렇게 중얼대면서도 그게 또 믿어진다.
중요한 건 은혜와 기적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는
물을 가져오라는 말씀에 먼저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아야 한다.
그것은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행위다.
돌을 옮기는 것 역시 이와 같다.
무슨 뜻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주님을 믿기에
돌을 옮기는 것이다.
돌을 옮기는 것이 먼저다.
돌을 옮기는 것은 사람마다 그 행위와 의미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새벽기도가 돌을 옮기는 행위일 수 있고
어떤 이는 노모에게 거는 매일의 안부전화가 그럴 수 있다.
오늘 산적한 많은 문제 상황 속에서,
오늘 처리할 많은 업무와 만나야 할 많은 만남 가운데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먼저다.
그것도 돌을 옮기는 것과 같다.
시간이 없고 마음이 분주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과 앞서 행하심을 신뢰하는 자는
우선순위를 확고히 하고 주님이 이루시는 일을 보는 자다.
주여
오늘도 저에게 옮기라 명하신 돌을 옮기는 순종이 있게 하소서.
무엇을 하실지 알지 못할지라도
내게 요구하시는 작은 순종과 성실함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게 하소서.
여기까지 글을 썼는데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몇 번이고 되뇌어 고백합니다.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겠습니다.
내가 옮겨야 할 돌을 옮기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38절~44절
my sweetdawn d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