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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Oct 27. 2023

소원

요즘 생각하고 있는 내 머릿속의 주제는 소. 원입니다. 죽기 전에 책 한 권만, 나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 한 권만 출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거든요.


올 해도 브런치 공모전을 3년째 건너뛰었더니 남편이 옆에서 지청구를 합니다.


"아니 왜 너 글 안 쓰냐? 작가 언제 될 거야?" 그러길래, 핑계랍시고 노트북이 없어서 글도 못 쓰고 브런치 공모전도 못한다고 했더니 아니 글쎄 이 짠돌이 남편이 몇 개월 할부인지는 모르겠으나 노트북을 할부로 결제를 했더라고요.


내년엔 더는 핑계를 댈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노트북이 도착한 지난 월요일부터 계속 머릿속에 그런 말이 자막으로 한 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쓰자, 써. 죽기 전에 버려지지 않을 책 딱 한 권만 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어요.


내가 쓰고 싶은 책 한 권에 채워질 이야기는 어쩌면 브런치에 발행한 수십 편의 이야기가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시민 아줌마가 살아낸 일상이 전부인 수필집.

그걸 누가 읽겠어 싶어서 차마 공모도 하지 못했던 너무 평범한 이야기 말입니다. 큰 카테고리로 몇 개 나눠보자면 음식에 관계된 추억이 있겠고 나의 친정을  이산가족으로 만든 아빠의 보험금 수령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또 한 챕터는 갱년기로 접어든 아줌마가 살아낸 이십몇 년의 굴곡진 삶의 일상이야기로 나누면 될 거 같은데 이 두서없는 내용이 하나로 묶일 제목을 찾아내질 못하고 있습니다.


주제를 포함한 제목이 뚜렷하면 지리산 골짜리처럼 흩어진 난맥의 이야기들도 하나의 줄기로 이어져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납득이 갈만한 그런 스토리가 될 수도 있을 거 같거든요.


소원이니 고민하다 보면 나올지도요.


그런데 딱히 소원이 다 이루어지란 법도 없고 이루어져야 하는 법도 없습니다. 내 하고 싶은 일을 마음에 은장도처럼 품고 사는 일도 꽤 멋지다는 걸 이제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알겠더라고요.


꼭 내 손에 쟁취한 면류관을 보며 의기양양 승리의 미소를 만면에 가득 품어야 그게 사는 맛이 완성이 되는 건 아니란 걸 50살에서 한 살 빠진 나이가 되어서 조금이나마 알아졌습니다.

하루의 소중함에 취해서 안빈낙도하는 중입니다. 하루의 일상에 끌탕하며 사는 일이 꽤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 일상 속에서 글쓰기를 놓지 않고 살다 보면 나도 일본의 어느 할머니처럼 백 살 가까운 나이에 낙심하지 말라며, 인생은 꼭 한 번 살아볼 만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젊은 세대에게 나눠주고 죽을 수도 있을지도요.


오늘은 남편이 반차를 내고 북한산 골짜기에 있는 카페에 놀러 왔습니다. 나오면서 노트북도 꼭 들고 나오라는 주문을 잊지 않는 남편의 핸드폰에는 나의 이름이 와이프도 아니고 내 사랑도 아니고 정은이도 아니고 김정은작가라고 저장이 되어있습니다.


남편의 소. 원은 내가 얼른 출간작가가 되는 것인가 봅니다. 그래서 그 소원을 담아 핸드폰 이름마저도 작가라 저장해 놓은 남편은 노트북을 옆구리에 끼고 졸음을 양볼에 가득 문 나이 든 아내가 엉거주춤 따라오는 걸 지켜보며 등을 떠밀어 카페의 루프탑에 밀어 올려놓고 혼자 산책을 나갔습니다.


글을 써보라는 묵언의 주문입니다. 기꺼이 오늘은 남편의 숙제를 잘하는 모범생 아내의 코스프레를 해줘야겠습니다. 결국엔 나의 소원도 남편의 소원도 내가 좋은 글, 좋은 생활문을 쓰는데 일치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오늘 숨어든 북한산 자락의 하늘도 낙엽의 색깔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하루입니다. 이 날을 기록해 놓고 내년 이 맘 때는 브런치 공모전에 꼭 도전해 보는 걸로 마음을 먹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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