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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Feb 09. 2024

07. 아빠가 남겨놓고 간 재산, 4천5백 원.

아침해가 주는 밝음이 나의 처소에 제발 빨리 도착하길 기다리는 불면의 새벽은 참 지루합니다. 고층 아파트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난쟁이 같은 구축아파트의 2층에는 한참이나 더 늦게 당도하는 아침해의 빛은 7시에나 겨우 해의 꼬리가 밟힐듯한 시기라 밤이 더디고도 더디게 가거든요.


너무 일찍 부엌에서 서성대면 이 작은 집의 적막과 고요가 깨져버리는 탓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도둑고양이의 발걸음으로 살금살금 내디뎌 생강차 한 잔을 겨우 타와서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 앉아봤습니다. 나는 이런 불면의 밤을 또다시 맞고야 말았습니다. 나에겐 언제든지 고개를 쳐들고 나를 토끼굴로 밀어 넣으려는 우울증의 뿌리가 남아있었는데 그것이 기어이 도지고 만 거 같습니다.


식구들 몰래 자주 울고 자주 눕습니다. 자주 무기력하고 밥에 대한 의욕이 사라졌으며 배가 고픈 게 너무 귀찮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닌 것이 한 번 겪어본 병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아서 어제는 작년 기억 중에서 제일 행복하였던 시절에 만난 젊은 친구를 청해 그 친구의 귀한 시간을 몇 시간 빌려 썼습니다. 오만게 다 귀찮을 우울감의 한복판이지만 그 친구라면 나를 이 골짜기의 진창에서 잠시라도 꺼내줄 수 있을 거 같았고 나의 예감은 맞았습니다.


손목이 부러지고 나서 내 몸은 미치게 단백질을 갈구했었습니다. 평소엔 먹지도 않는 콩자반을 수저로 허겁지겁 퍼먹고 누린내 나는 고기도 꿀떡꿀떡 잘 씹어 삼키며 뼈에 갈 영양분을 미치게 갈급하였던 나의 영민한 정신은 뼈가 부러진 곳에 어떤 게 필요한지 알아서 스스로 살 길을 찾으려 애쓰려는 의지가 매우 많았으니 다시 찾아온 우울증에도 과한 걱정은 안 하고 있는 중입니다.


거울만 보면 이렇게 슬플 줄 나는 예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아빠의 죽음이 나에게 이런 우울감을 가져올 줄도 당연히 몰랐습니다. 외갓집에서 동생들을 데리고 탈출하였던 직후로 헨젤이 되어 동생들을 다시 내가 머물 할머니의 집으로 인도하였던 그날 이후, 아빠와도 같이 살게 되었는데 나는 새벽에 종종 아빠가 켜둔 마당 한편의 불 빛 때문에 잠을 깨곤 했습니다.


나보다 더 어린 동생들은 곯아떨어졌을 새벽에 마당 한편에 놓아둔 아빠의 작업선반쪽의 환한 불빛이 하필이면 내가 자는 방향에서 잘 보여서 깨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 새벽에 아빠가 자지 못하고 새벽 내내 그 칠흑 같은 어둠에 전구 하나를 켜두고는 연장들을 반듯하게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훔쳐보곤 했습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하였고 할 수 없었던 그 행위가 지금은 이해가 갑니다.


자신의 사십 평생의 작은 공업사를 잃어버린 아빠의 상실감과 엄마에 대한 배신감이 화병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었겠죠. 연장을 칼각으로 반듯하게 놓아두고 먼지를 털어내고 기름때를 벗겨내는 일로 불면증을 견디려 했던 아빠는 비겁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였습니다. 아빠에 대한 몇 개의 좋은 기억으로 평생을 아빠를 증오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또 그즈음의 어느 날의 기억 하나, 학교에서 오는 내내 나는 너무 슬펐답니다. 숙제를 내줬는데 필기를 할 공책이 없었던 거예요. 숙제를 해가야 하는데 공책을 절박하게 사야 했는데 집에 공책 한 권 살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아홉 살의 나는 잘 알았거든요. 새벽녘에 할머니가 뒤주에서 쌀을 꺼낼 때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큰 뒤주의 바닥에 깔린 쌀을 긁어내려고 하니 득득 긁는 소리가 날 수밖에요.


아빠의 공업사가 없어진 것보다 엄마가 사라진 것보다 그때의 나에겐 공책 한 권 없는 일이 제일 큰 재앙이었습니다. 집에 가서 울먹거리는데 그 당시엔 멀쩡하게 맨 정신으로 술에 취하지 않았던 아빠가 나의 표정을 알아차리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셨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숙제를 해야 하는데 공책이 없다고 겨우 고백했고 아빠의 너무 슬픈 얼굴을 봐야만 했습니다. 그 장면이 아빠가 나에게 남긴 평생의 유산입니다. 아빠의 눈빛에 꽉 찼던 미안함을 잊을수 없습니다.


아빠를 그 몇 컷의 기억으로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돌보지 않고 나를 양육하지 않았던 죄, 그 방임죄와 학대를 차마 미워할 수가 없고 원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행여나 동생들이 빚을 남겨놓았을까 싶어 안심유산받기 서비스를 신청하였고 수십 개의 은행과 구청과 행정기관이 아빠의 신원과 재산을 조회해서 나에게 문자로 알려주었는데 돌아오는 답신이 한결같이 깔끔하고 단조로웠습니다. 김 00님이 남기신 금액이 없습니다. 김 00님의 앞으로 남겨진 재산이 없습니다. 그런 문자들 사이에 우체국에서 이런 회신이 왔습니다.


‘김 00님의 계좌에 4,500원이 남겨져 있습니다’


동생들은 아빠의 얼마 남지 않았던 보잘것없던 땅 조금과 집을 팔아서 잘 정리했고 아빠 앞으로 남은 예금도 없었으며 고맙게도 빚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 들이 잘 정리해 준 덕분으로 나는 이제 더 이상은 동생들에게 혈육이라는 일말의 남은 정도 모두 회수할 수가 있습니다. 동생들에 대한 혈육에 대한 그리움, 그게 어떻게 한 순간에 없어질수가 있었겠어요. 하지만 이젠 그것조차도 회수했고 나는 진정한 의미의 고아로 남아 오늘의 우울감을 견디고 있습니다.


아빠에 대한 원망 한 줄이 돋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아빠, 어쩜 그래... 하는 서운한 독백이 나오며 거울을 보고 섰다가 그 거울에 내가 아니라 아빠가 서 있어서 그때부터 아빠가 남긴 게 4,500원 만은 아니란 거, 그건 아니라고 나를 새롭게 설득중입니다. 나의 훤칠한 키도 아빠를 닮았고 나의 반듯하고 잘생긴 얼굴도 아빠를 빼닮았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자지 못하고 나왔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청소를 했습니다. 거실소파에 놓인 나의 담요를 반듯하게 개어봤습니다. 어질러진 개수대를 정리하고 스텐냄비의 묵은 때를 수세미로 문질러 봅니다. 이런 행위들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고 정리가 아니고 아빠가 물려준 유산입니다. 나도 그 새벽에 보았던 연장도구들을 정리하던 아빠처럼 이런 것들을 정리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


잘 닦여진 수전을 보며 마음의 울증이 조금은 삭아집니다. 더 누우려다가 개켜진 담요를 보게 되면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두고 싶은 나의 육신을 꼿꼿하게 세우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듭니다. 이건 굉장한 의지라며 내가 나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새벽의 간단한 정리를 마치며 저는 저에게 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정은아, 너는 너무 지혜로운 여자야. 정말 지혜롭고 아름다운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슬퍼하지 마.‘


아빠가 나에게만 남긴 유산을 기억해야 합니다. 매일 나에게 되뇌어고 있습니다. 그래야 형제들이 나에게 준 큰 절망과 슬픔을 녹일 수 있습니다. 아빠는 나에게 훨칠한 키와 멋진 용모와 남들이 모두 탐내는 손재주와 그리고 우울과 큰 슬픔에서 나를 구해줄 정리의 습관도 남겨주었습니다. 아빠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을 받은 나는 지금의 우울증도 슬픔도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나의 영민한 정신은 슬픔의 독에 빠져버린 나를 구해내려고 모든 긍정회로를 가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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