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취업 전까지의 이야기
14년 차 ( 경력 13년 6개월 ).
정규직만 6개 회사, 비정규직/프리랜서 포함 10개 이상.
최근에는 평생직장은 없다고도 하고,
회사 다니면서 크리에이터 하면서 투잡 하시는 분도 많고,
인생 이모작에 따른 2nd 직업에 대한 얘기도 나와서 많은 경험을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다.
오히려 여러 회사를 거친 것이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겪어오면서 내가 주로 받았던 이야기는
'그렇게 회사 다니면 안 돼', '회사는 참고 오래 다녀야지' 였다.
하지만 좋게 표현해서 '빠르게 성장하고자 했던 열정이 넘쳤고'
나쁘게 말해서는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융통성이 없던'
나는 일찍부터 비상식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들을 풀어볼까 한다.
첫 시작은 첫 취업을 하기까지의 이야기다.
2000년대 중반
지금은 취업난의 시대이지만 ( 더 정확하게는 취업난과 구인난이 동시에 와있는 시기)
그 당시만 해도 IT붐이 아직 꺼지지 않았고 컴퓨터만 웬만큼 할 줄 알면 그래도 취업이 잘되던 시기였다.
1, 2학년은 다들 술 먹고 놀다가, 군대 갔다 와서 정신 차리고 공부하면 된다는 게 불문율이자,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얘기하던 자랑거리였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흘러 흘러 와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네트워크 / C++ / 자료구조 / 인공지능 갖가지 어려운 개발을 배웠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고,
제대로 된 개발이라고 해본건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던 로봇이 주제인 임베디드 개발 일부 정도였다
임베디드 개발도 잘알지도 못하고 따놓은 리눅스마스터 덕분에,
OS에 대한 개념이 일부 있어서, 학기의 1/3 정도를 먹고 들어가서였지 사실 수준 미달이었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깨달은 돈 벌기의 어려움과 졸업이라는
현실은 어느새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복학생의 모든 운명을 바꾼 그 시작은 뜻하지 않던 '사고'였다.
고속도로에서 한쪽 타이어가 터져 2바퀴 반을 돌아 가드레일을 들이받던 친구의 차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를 정면에서 마주했다.
우리가 탄 차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고속도로를 역주행 하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아'라고 외쳤지만 이미 차는 제동을 할 수 없었고, 운전을 하던 친구는 정신을 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주오는 몇대의 차가 비켜지나가고도 차는 한참을 빙글빙들 돌았고,
중앙선을 들이 받고서야 속도가 줄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차가 멈춘 건 고속도로 한쪽 벽을 정면으로 들이받고 난 뒤였는데,
그 모든 과정이 죽음의 공포마저 느낄 새도 없이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가버렸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대형사고로 번질 수밖에 없던 상황.
트라우마라는 개념조차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차를 탈 때면 어김없이 손잡이를 찾는 불안증도 상당히 오랜 기간 없어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일행 모두가 살아있음에 감사했지만,
조금 더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오른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발견했다.
'손목 골절'
엑스레이 사진은 마치 만화에서나 볼법한 사진처럼 뼈마디가 끊어져있었고,
그렇게 2달간의 깁스 + 2달간의 회복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여렸을 때 컴퓨터학원(그 당시는 컴퓨터학원이라는 게 있었다)에서 배웠던
gw-basic / Cobol / portran(포트란) 보다도
대학에서 느리게 코딩을 배워나가고 있던 내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공백.. 이 갑자기 생겼다.
한 손으로 아무리 따라가려고 해 봐도 코딩을 할 수가 없었고, 한 학기 내내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 조금 더 솔직한 자아에게 묻는다면 '코딩 어렵다' 생각하던 차에 도망칠 핑계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
어쨌든 휴학을 하기에도 애매한 시점에서
당장 학교를 다니면서 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선택은 '팀 프로젝트의 발표를 담당하는 일'
다행인지 불행인지 컴퓨터과학 전공 학생들은 하나같이 발표를 기피했기에
이 롤을 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때마침 가까스로 명맥을 잇고 있던 동아리의 외부 발표까지 담당하며,
손이 아닐 입으로 ( 물론 생각은 머리로 ) 버텨 내는 게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리고 운명처럼 마주했던 '카이스트 창업대회'
코딩을 할 수 없던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라는 직감을 느꼈고, 그렇게 도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선을 뚫고 본선에 나간 것 자체가 운이었고,
( 아마도 당시에는 대학생 창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취업을 꿈꾸는 사람도 많이 없었다. )
허무맹랑한 예산, 투자계획, 수익계획, 마케팅 등 하나하나씩 찾아가며 또 배워갔지만
결과는 역시나.. 뻔했다.
수상권에 들지 못했지만 참여한 모든 학생에게 장려상이라도 만들어준 마음 넓은 주최 측 덕분에
이때의 경험을 계속 곱씹어 보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기술기반의 지식들을 창업이라는 매개체로 표현하다 보니 어렴풋이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참여했던 '교내 창업대회'
10팀이 경쟁하는 PT에 당시 대학원생 조교 형님의 양복을 겨우 빌려 입고,
발표장에 기기도 연결할 수 없어 말로 때우는 게 반 / 경영학과에서 주워들은 내용 반으로 다시 도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글오글할만큼 허접한 발표였다.
하지만 그 때는 유일하게 할수 있는 일이었기에 부끄러움도 스스로의 부족함도 잘 느끼지 못했다.
하루만에 발표하는 저녁 시상식 자리에서
장려상부터 한 팀 한 팀 발표했는데, 왜 우리 팀 이름은 나오지 않는지
그러다 맨 마지막 대상 후보 직전까지 발표되지 않았다.
( 계속 어차피 안될 거라고 친구와 농담하면서도,
'나오지 말아라 나오지 말아라'를 외치며 손에 땀을 쥐었던 기억이 난다. ).
그리고 단상 앞에서 진행해주신 교수님께서 마지막 결승 후보를 앞에두고.
여기서 발표하는 팀이 우승팀일까요? 준우승 팀일까요? '
'우승팀 이요~~(단체로 대답..)'
'네 정답입니다.
'오늘의 대상은 (두구두구두구) 엘도라도입니다!! '
세상에 대상이라니
실제 구현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부분에 대한 질문에 대해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있어서요.로 근거 없는 패기만 들이밀었는데..'
내가 봐도 잘할 거 같은 쟁쟁한 팀들이 즐비했는데 대상이라니..
사실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었는데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안될 거 같아서 빌린 양복 갖다 주고 그저 평상복으로 시상식대에 올라간 것,
그 시상식 사진도 제대로 안 남긴 게 지금까지도 얼마나 후회되던지
살면서 내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본 적이 있던가
늘 2등까지만 해봤던 내 삶에
경쟁하는 자리에서의 1등을 하는 경험은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기쁨도 잠시,
왜 그렇게 등록금은 비쌌던 것인지,
최저지급이 없던 시절이라 왜 그렇게 알바를 해도 돈은 모이지 않던지
개발할 때 필요한 PC조차 구매하기 어려운 형편을 벗어날 수 없었고.
가난하면서도 게을렀던 컴공 지망생에게는 매일같이 고민이었고.
반대로 어느 정도 글로써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던 ( 지금 생각하면 약간의 자만심이 있던.)
사업계획, 창업 분야는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당연하게 생각했던 컴퓨터공학 전공 출신이 간다는 개발자의 길은
나에게는 조금씩 얼어져 갔고. 새로운 길이 찾아왔다.
그 모든 것은 살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지나갔던
'교통사고'
바로 그것이 시작이었고, 또한 계기가 되었다.
컴퓨터 공학보다는 경영학을.
코딩하는 시간보다는,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시간.
임베디드보다는 마케팅을 찾아보며
남들이 하는 졸업반 취업준비도 잊은 채 그렇게 대학 4학년의 마지막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