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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현 Mar 10. 2020

노 페널티 에어리어(2)

실패가 두려운 나에게

어디에서든 자신의 능력 그대로 혹은 그 능력의 110%, 120%를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보통 '무대 체질'이라고 부르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무대 위에서 날아다닌다. 신들린 것처럼 노래하고, 뛴다. 보고 있으면 조명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고, 경의로울 때가 있다. 나랑 다른 종인 것 같고,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막 그런 생각도 든다. 언젠가 한번, 그들 몸에는 사람들의 응원과 관심 그리고 기대를 먹고 에너지를 내는 세포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말 안 되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태양을 이용해서 작동하는 기계나 식물처럼, 그들은 관심을 양분 삼아 활짝 피는 것처럼 보였고, 반대로 나는 그런 것들이 견디기 힘든 열기라도 되는 것처럼 바짝 말라 시들어버린다.


평소에는 편안하게 부를 수 있던 노래도, 기분 내키면 혼자서 아무렇게나 아무 때나 잘 추던 춤도, 말도, 생각도 깔린 멍석 위에서는 모두 어색해진다. 마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갑자기 해야 할 때처럼 어렵고 난해한 일이 되어 버린다. 나의 무엇이 보고 싶은 관객은 숨을 죽이고, 때때로 손뼉을 치며 응원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아무것도 보여주기 어렵게 된다. 실망하는 눈빛에 내 입술은 더 마르고, 몸은 굳어버린다. 


무대 공포증을 가장 처음 알았던 것은 축구를 하면서부터였다. 언제부턴가 즐겁고 신나기만 했던 축구가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오른쪽 윙이나 공격수가 주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골 찬스가 내게 오는 경우가 많았다. 전력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대부분의 경우, 눈에 보이는 골 찬스는 10번이 넘기 어려웠다. 어떤 때는 한두 번의 골찬스를 살리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리기도 했다. 경기에 이기지 못해도 재밌는 경기는 잘 없었다. 게임은 뭐니 뭐니 해도 이겨야 재밌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골 찬스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트래핑에도 골 결정력에도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중요하고 좋은 찬스엔, 내게 패스하기보단 스스로 해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알게 모르게 패스하기 어려운 곳으로 빠져 있었고, 팀원이 나를 볼 수 있도록 신호를 주거나 멀리서 콜 하지 않았다. 내게 패스하지 않았으면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발을 맞춘 친구들은 내가 콜 하지 않아도 자주 내 위치를 짐작해냈다. 나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럴 때 내 슈팅은 골키퍼 정면으로 가기 일쑤였다. 계획이 없어서 조급했고, 골을 넣는 것보다는 골이 빗나가는 '실패'를 하지 않으려는 강박처럼, 공은 신기할 정도로 골대 한가운데로만 갔다. 그건 쉽게 고쳐지는 일은 아니었다. 그건 일에서도, 연애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에 나는 내게 패스하지 말길 바라며 상대 수비 뒤편으로 뛰고 있었다, 내게 패스를 할 수 없도록.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나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지만,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겪은 어떤 실패가 그렇게 큰 영향을 줬던 것인지 짐작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실패하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모습뿐이었다. 친구들은 그걸 나보다 잘 알고 있었고, 간혹 알려줬다.

"네가 하는 노력에 비해서, 또 네가 가진 능력에 비해서, 그걸 누리는 방법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아."

정말 마음에 들어하는 친구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지 않았던 것, 충분한 성적으로도 더 좋은 대학의 문을 두드리거나, 재수를 택하지 않고 2년 치 전액 장학금으로 만족한 것, 나쁘지 않은 학점과 스펙을 가졌음에도 단 두 곳의 대기업에만 지원하고 떨어지자 아무렇게나 취업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것, 자리에서 충분한 능력을 보여주고도 그만한 보상을 받지 못하며 지내는 것 등이었다. 친구들은 이 중 하나 혹은 여러 개를 알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좀 난감했다. 내 기운이 나도록 하기 위해서, 기분이 좋게, 자신감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 저렇게 말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들이 기억하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훨씬 크고 착하고 유능하고 바라는 것에 근접해있었는데, 그 차이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 차이가 났다.

"그랬다고? 그건 네가 잘못 기억하는 거 같은데."

내가 대답하면,

"아니라고......"

하고 친구가 답답해했다. 나는 친구가 답답해하는 것이 싫었고, 어서 이런 대화를 끝내고 싶어서 늘 알겠다고만 했다. 

"알았다. 알았다. 내가 잘 누리고 행복하게 지낼게. 됐지? 그래도 기분은 좋네"
"니는 억울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기분 좋은 게 아니라... 병신아"

나한테 병신이라고 하는데도 뭔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력은 내가 훨씬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나 대신 억울해하는 친구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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