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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혜 Aug 19. 2019

꿈 곁을 맴맴

환상과 현실과 환상과 다시 현실

2018년 1월 - 꿈 곁을 맴맴

“서른 즈음엔 나도 글 써보고 싶었다?”

오랜 친구가 맥주를 사 들고 놀러 왔다. 간단한 안주거리를 내놓고 술 한 잔 기울이며 근황을 나눴다. 술기운이 거나하게 돌았다. 책과 작업했던 원고가 가득 꽂힌 나의 책장을 둘러보며, 친구가 슬픈 눈으로 말했다. 있잖아, 나. 나도 너처럼 정말 글이란 걸 써보고 싶었다? 

대학 시절을 함께한 그녀는 나보다 더 감수성이 많았다. 찬 바람이 불어오면 갈대를 보겠다며 휙 떠나기도 했고, 싱그러운 새순이 자라는 계절엔 한참 동안 그 초록을 바라보던 친구였다. 졸업 후 직장으로 들어갔고, 회사에 다니며 주말마다 취미로 글을 썼다. 글 쓰는 내 친구를 조용히 응원했고, 그녀가 쑥스러워하며 내미는 글을 군데군데 손봐주곤 했다.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친구의 일은 점점 많아졌고, 회식이다 야근이다 이런저런 직장 생활에 치여, 아쉽게도 이젠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있다. 

“대신 넌 매달 월급을 받잖니. ‘안정’이라는 건 엄청난 거다, 너.”

진심이었다. 

소설가 김연수는 그가 쓴 에세이에서 ‘소설가가 되는 길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 했다. 그만큼 글만 써서 먹고 산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글 쓰는 삶이란 일정 궤도에 다다르기까지 ‘불안’의 연속이다. 안정되지 않은 시간들을 견디며 끊임없이 헤쳐나가야 한다. 그래서 처음 이 판에 들어왔을 때, 내 손을 잡아준 작가 언니가 가장 먼저 이런 말을 했다. 

“잘 쓰려 하지 말고, 대박 내려고도 하지 말고, 버틴단 생각만 해.”

버티면 되는 거야. 

그 말을 속으로 되뇌길 몇 번. 치열했던 20대, 불안과의 싸움에서 난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나가 떨어졌다. 그대로 짐을 싸서 대전으로 내려갔다. 일을 하고, 돈을 벌러. 가족 모두가 만류한 일을 하겠다며 국문과에 진학했을 때부터, 안정된 직장을 때려 치고 다시 글 쓰겠다 했던 때부터,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질 테니 조용히 지켜 봐달라 했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분명 꿈과의 싸움에서 졌다. 약속대로, 글 쓰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시작했다. 마음 속 여전히 작가라는 꿈은 품고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일하고 남는 시간 빈 마음을 채우려 고전 명작을 다시 읽었고, 창작이라는 바다에서 버티고 있는 –한 때 동료였던- 작가들을 먼발치서 바라보았다. 

돌이켜보면, 글 쓰는 직업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계속해서 이 일 저 일 다른 일들을 병행했었다. 만약을 대비해 교사 자격증을 따려고 교직 이수를 했고, 만약에 만약을 대비해 방송도 잠깐 했다. 창작과 연구를 연결해보려고도 했다. 괜찮아, 하루키도 조그만 술집을 하면서 글을 썼지. 김연수도 출판사에서 일했었고. 주위에 젊은 창작자들은 다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잖아. 그러니, 나도 잠시 다른 일을 해도 될 거야. 언젠가 다시 글을 쓸 테니까. 그렇게 20대를 보냈다. 창작을 했다가, 일을 했다가, 불안도 안정도 아닌 시간을 시계추처럼 반복하며. 

꿈이라는 바다가 있다면, 나는 아직 ‘작가’라고 불리기 부끄러운 사람이다. 연구원, 학생, 캐스터 기타 등등 거쳐온 여러 직업들이 너무나도 많은 까닭이다. 저 멀리서 평생 작가로만 살아온 이들이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헤엄치고 있다. 치열하게 부딪히며 물거품을 만들어내고, 진주 같은 작품들을 빚어낸다. 반대편 모래사장에 토대를 닦고 안정된 집을 짓는 이들은 하나 둘 가족을 일군다. 서른에 접어들기까지 나는 해안가에 서서 밀려오는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가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그 이상한 물 온도를 잊지 못해 다시 손이라도 담갔다가. 물살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이들을 보며 공포를 느꼈다가. 

꿈 곁을 맴맴 돌던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뛰어들려 해.”

살짝 긴장한 두 손을 친구가 따뜻하게 잡아줬다. 오랜 지기의 편안한 응원. 팡팡- 친근한 등짝 스매싱과 함께. 

“응원한다. 앞으로도 쭉.” 

서른엔 꼭 글을 써보고 싶었단 친구가 맥주 잔을 들어 올렸다. 쨍-, 잔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술을 들이켰다. 시원했다. 삶의 여러 선택지 앞에 올해는 이제 ‘글쓰기’만 남아있다.   

[출처] [월간 안전가옥 1월] 꿈 곁을 맴맴 by 김민혜|작성자 안전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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