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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빛 Sep 09. 2020

먹는 것에 대한 기쁨을 통째로 잃어버리다

입덧의 괴로움


[입덧의 시작]


    입덧을 빼고 임신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겪어 본 임신 초기부터 중기까지는 임신이 주는 괴로움 중 8할은 입덧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 입덧의 정도는 보통 유전이라고 한다. 친정 엄마가 입덧을 얼마나 심하게 했느냐에 따라 딸의 입덧의 정도도 정해진다고. 나는 그 말만 철떡 같이 믿고 입덧에 대한 두려움 조차 가지지 않았었다. 내가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엄마는 '그냥 좀 울렁울렁하고 말았어.'라고 입덧을 회상하셨다. 그리고 내가 직접 목격했던 우리 언니의 입덧 또한 '고기가 좀 안 땡기네.' 정도였다. 난 당연히 나도 비슷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처음 입덧을 느낀 건 임신 5주 차 끝무렵쯤. 평소처럼 양념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는 문득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다. 아, 이제 시작인가 싶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도 입덧을 겪어보는구나!'라는 생각에 임신이 실감이 나서 재미있었다. 신랑에게 새콤달콤이 먹고 싶다고 떼를 쓰고, 신랑은 바로 나가서 새콤달콤 한 바가지를 사 오고, 새콤달콤을 먹으면서 '우와 나도 이제 입덧하나 봐.'라고 말하며.. 그냥 그렇게 나의 입덧은 처음엔 재미있게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시작에 불과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입덧의 세기가 강해졌다.


[입덧의 종류와 괴로움]


    입덧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끊임없이 토하는 토덧, 먹지 않으면 괴로운 먹덧, 이 두 가지가 가장 흔한 케이스. 그 외에도 양치할 때마다 괴로운 양치덧, 침이 자꾸 올라오는 침덧, 각종 냄새를 참을 수 없는 냄새덧, 먹기만 하면 체하는 체덧 등등.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모든 종류의 입덧을 다 겪어봤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니글니글 거리고 구역질부터 나왔다. 아침 빈 속에 이를 닦는 일은 제일 괴로웠다. [양치덧!!] 양치 중 구역질은 항상 했고 (심지어 23주인 지금도 가끔 한다!!), 양치 중에 갑자기 옆에 변기에 머리를 박고 토한 적도 많았다. 그리고 속이 빈 상태가 제일 힘들어서 아침엔 뭘 꼭 먹어야만 했다. [먹덧!!] 어쩌다 빈 속을 제대로 채우지 않고 출근한 날은 무조건 출근길에 토를 했다. [토덧!!] 출근 셔틀에서부터 올라오는 토를 억지로 삼켜내고 셔틀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는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뭐라도 조금 먹고 출근한 날은 먹은 것을 그대로 토했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출근한 날은 위액과 쓸개액을 토했다. 위액은 노란색, 쓸개액은 초록색이라는 것도 입덧을 통해 배웠다. 평소에는 토물처럼 침이 자꾸 목구멍으로 올라왔고, [침덧!!] 지하철 옆 자리에 앉은 여자의 향수 냄새부터 내가 항상 사용하던 샴푸 냄새까지 모든 냄새가 역겨웠다. [냄새덧!!] 초기에는 진짜 냄새덧이 심해서 흰쌀밥 냄새도 토할 것 같았고, 평소엔 전혀 거슬리지 않았던 (오히려 사랑스러웠던) 남편의 몸 냄새가 역겹기도 했다.


    역겨운 것, 구역질 나는 것, 토 하는 것 모두 괴로웠지만, 가장 괴로웠던 것은 먹는 것의 기쁨을 통째로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임신 6주 차쯤부터 12주 차까지 정말 나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고기 종류는 보기만 해도, 아니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나왔다. 양념이 강한 것은 냄새만 맡아도 괴로웠고, 거의 모든 한식은 입에 대지도 못했다. TV를 틀면 죄다 먹방이라 TV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입덧에 대해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임신하니까 뭐가 제일 먹고 싶으세요?'라고 물어봤지만, 난 먹고 싶은 것은커녕 모든 종류의 음식이 꼴 보기 싫었다. 그냥 제발 먹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맛있게 음식을 먹는 기분이 어떤 건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무슨 수용소에 갇힌 사람의 일기 같아." 지금 옆에서 내 글을 얼핏 본 남편이 말한다. 그런데 사실이 그랬다. 나는 입덧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먹는 것에 대한 기쁨과 자유를 박탈당한 채로 살았다. 시간 동안 입버릇처럼 했던 말은,

"음식을 맛있게 먹던 예전으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라는 말이었다. 그때 그 심정으로는, 정말 앞으로 영원히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 입덧이 심하던 그 시기를 복귀하고 있자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또다시 구역질이 올라온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먹고살 수는 없기에, 매일 꾸역꾸역 무언가를 입에 넣었다. 정말 생존을 위해 먹는 거였지,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입에 들어갔던 것은, 햄버거, 샌드위치, 피자, 파스타, 부리토 등 서양식 종류. 밀가루와 새콤한 양념이 입덧을 조금 달래줬다. 그리고 한식 중에는 양념 없는 맑은 국과 밥, 차가운 면요리. 그리고 엄마 밥. 딱 그 정도였다. 또 다른 문제는 얼마나 먹느냐였다. 조금 먹으면 속이 비어서 토를 했고, 토 할까 봐 조금 많이 먹으면 바로 체했다. [체덧!!] 정말 단 한순간도 속이 편한 적이 없었다. 속이 너무 불편한데 먹지도 못하고 토도 못하고 너무 괴로워서 우는 날들이 많았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자 나름 조금씩 노하우가 생겼다. 침대 머리맡에 크래커를 두고 잠들었더니 아침이 비교적 편해졌다. 일어나자마자 눈을 뜨기도 전에 손으로 더듬어 크래커를 찾아 입에 넣었다. 또 가장 효과적이었던 노하우는 "조금씩 자주 먹기"였다. 이건 입덧 중에는 진리의 문장이다.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머릿속에 입력해두자.




[입덧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들]


    이렇게 괴로운 입덧,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 입덧의 원리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고 한다. 호르몬 때문이라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고, 심리적인 요소도 영향이 있다고 한다. 실제 기분이 우울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입덧이 더 심해졌었다. 최대한 스트레스 안 받고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설 중에 하나는 "산모의 몸이, 새로 생긴 아가를 이물질로 인식하기 때문에 입덧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설과 함께 붙어 다니는 또 다른 이야기는, "아가가 아빠를 닮을수록 엄마의 DNA와 상이하기 때문에 아가를 더 이물질로 인식해서 입덧이 심해진다."는 이야기이다. 이 속설을 진짜로 믿지는 않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입덧할 때마다 '오빠 때문에 내가 입덧하는 거잖아!'라고 말하며  신랑에게 투정을 부리고는 했다. 착한 우리 신랑은 내가 입덧하는 내내 내 투정도 다 받아주고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해 줬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 사 오거나 직접 요리해줬다. 나의 임신 기간 중 우리 신랑의 공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제대로 글을 쓸 날이 있으리라.


    입덧의 악명에 걸맞게,  괴로움을 설명하는 비유들도 다양하다. 배 멀미로 비유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입덧은 파도치는 바다를 작은 통통배를 타고 항해하는 느낌이라고. 또 누군가는 입덧을 소주, 맥주, 와인, 막걸리, 위스키를 다 섞어 마신 다음날의 숙취와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배 멀미나 숙취보다 나만의 비유법을 들어 입덧을 설명하고는 했다.

"배 안에 엄청 큰 개구리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내가 만든 표현이지만 너무 잘 만든 표현이다. 엄청 큰 개구리가 내 턱 끝까지 차 있어서 자꾸 모든 것이 역겨워진다. 뭘 겨우 먹어도 내가 먹는 게 아니라 개구리가 먹는 듯, 배부름도 기쁨도 느낄 수 없다. 징그럽고 미끌미끌한 개구리의 모습도 입덧의 느낌과 참 잘 어울린다. 예쁜 아가와 함께 내 속에 찾아왔던 "입덧 개구리"는 12주 차쯤 조금 작아졌고, 16주 차쯤부터는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를 반복하다가, 20주 차가 되니 이제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도 양치하다가 한 바탕 토를 했다. 약간의 입덧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보통 사람(?)은 12주쯤부터 괜찮아지고, 심한 사람은 출산 후 미역국을 먹으면서도 구역질을 한다고 하니... 뭐 내 입덧의 완벽한 끝도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입덧과 닮은 개구리, Unsplash


    그래도 입덧의 유일한 장점은 언제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어쨌든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S.E.S의 노래 '달리기' 가사 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내 입덧은 아직 약하게 남아있지만, 다행 먹는 것의 기쁨은 완벽히 되찾았다. 정말 영원히 잃어버릴 것만 같았던 기쁨이라, 이제 이 기쁨의 소중함을 더더욱 실감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너무 잘 먹는다.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열심히 먹고 있다. 이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맘껏 먹자. 여보, 야식으로 치킨 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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