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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가 필요한 시간

오늘 저녁메뉴는 죽음입니다


”남자는 가끔 이유 없이 혼자 있고 싶고

 여자는 가끔 이유 없이 울고 싶다.“     


  요즘 이 말이 가끔 생각이 난다. 아니 예전보다 자주 생각난다. 울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냥 문득 눈물이 흐른다. 운전을 하다가, 책을 읽다가, 혹은 티비를 보다가도 문득. 나이 60에 고아가 됐다는 사실이 새삼 슬퍼서도 아닌데 위의 말처럼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그야말로 애도의 기간이라서 그런 걸까.      


  새벽 4시쯤 핸드폰이 울린다. 새벽 전화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소리가 나자마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안 그래도 불안해서 잠이 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던 참인데. 새벽 한시까지 지켜보다가 조금 안정이 된 것 같아서 돌아왔는데 세 시간 만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새벽 4시 반, 친정에 다시 도착. 아무리 강철같이 마음을 먹어도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무얼 먼저 해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하고 우선 112에 전화를 한다.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니 경찰이 주소를 불러 달라고 하는데 울음이 말을 막는다. 요양보호사분께 전화를 바꿔주고 다시 정신줄을 붙잡으려 심호흡을 깊게 힌다. 경찰이 119에도 신고를 해야 한단다. 

  조금 기다리니 경찰 두 명이 와서 자초지종을 묻는다. 곧 119에서도 두 명이 와서 호흡과 심정지를 확인한다. 심페소생술을 안해도 되는지 다시 묻는다. 의례적인 과정이다. 두 명의 형사가 더 오고, 과학수사대에서도 나와 사진을 찍고 정황을 또 확인한다. 병원에서 돌아가시면 하지 않아도 될 절차이다. 집에서 돌아가셨기에 사인을 몇 번씩 확인한다. 93세에 노환이니 특별한 이유는 없다. 수명을 다하시고 자연스럽게 떠나셨다. 

  마지막으로 검안의가 와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준다. 그제서야 영안실로 옮길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그 후 병원에서의 장례 절차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요즘은 90% 이상 병원에서 돌아가시기 때문에, 집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집에서 돌아가셨다. 집에서 간병을 하고 마지막까지 버티는 일이 쉽지는 않다. 아빠가 편찮으셨을 때는 엄마의 정성이 있어서 가능했다. 

  앞의 글에서 썼던 것처럼 엄마도 집에서 편히 눈 감으시는게 나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심한 통증 없이 응급실이 아닌 집에서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장례를 치르는 동안, 그리고 그 후에도 사람들은 계속 묻는다.     

”원래 지병이 있으셨나? 왜 갑자기 돌아가셨어? 너무 고생하셨네“     

  물론 지병도 있긴 했다. 당뇨도 있고 혈압도 좀 있고 치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병 때문에 돌아가시는 건 아니다. 잘 관리해서 합병증도 없고,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전문가들이 말한다. 노환은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니라고.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끝까지 죽음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서인지 노환도 병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때까지 뭔가 처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미 심장이 멈추려 해도 환자를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할 도리를 다하지 않은 것처럼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마지막까지 왜 병원에 가지 않았는지 이상하게 묻는 사람도 있다.      


  많이 알리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남에게 설명하는 거 귀찮아하고, 사람 만나기 싫어하는 나의 이상한 기질 탓이다. 물론 알리지 않았다고 나중에 원망을 들을 각오도 했다. 생전 연락도 없던 사람들조차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한다. 좋은 일은 모르지만 나쁜 일일수록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 그 말이 맞긴 하다. 나도 결혼식을 몰라도 문상은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온 동네가 장례를 같이 치르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병원 장례식장에서 알아서 해주니 가족들이 신경 쓸 일도 별로 없는데. 평소에 만나기 힘든 친구나 친척들이 문상을 핑계로 보는 건가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발인하는 날 폭우가 쏟아졌다. 화장장까지는 날이 괜찮더니만 장지에 도착하자마자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곧 장대비가 퍼부었다. 

 산소에는 비를 피할 천막이 쳐있고 땅이 깊게 파져 있었다. 아빠 산소에 합장을 하기로 했다. 두분 다 화장을 하셨으니 유골함만 같이. 비가 와서 간단히 예를 올리고 흙을 뿌리고 돌아섰다. 갑자기 허무함과 피곤이 몰려왔다.      


  사람들이 종종 슬프거나 힘들지 않냐고 물어 보지만 장례를 다 치르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참을 지나야 갑자기 생각이 나고 눈물이 난다. 애도의 시간이 얼만큼이라고 정해져 있지는 않다. 사람마다 다를테니까. 

  돌아가신 아빠는 가끔 보고 싶은데, 엄마는 어떠할지 아직 모를 일이다. 오빠는 꿈에 아빠가 자주 보인다는데 내 꿈엔 나오시지 않는다. 꿈에라도 보고 싶은데.


  아주 천천히 애도의 시간을 보내려 한다. 몇 년이 될지, 아니면 나의 나머지 평생이 될지 나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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