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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빈 Aug 13. 2020

일하지 않는 나라


프랑스에 도착한 지 4주, 한국인이 나 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 프랑스의 서남부 도시 후아이양(Royan)에서 생활한 지 3주. 지금 나에게, 프랑스를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그건 ‘일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


그런 생각은 프랑스인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됐다.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무렵부터 친했던 알렉스. 언제나 사람들을 이끌고 파티를 벌이고 기숙사 방에 초대해 영화 모임을 하고 함께 가는 여행을 계획했던 친구다. 2009년 서로의 나라에 돌아가 2010년 일본에서 짧게 재회한 후, 근 4년 동안 우리는 페이스북으로 가끔씩 연락을 이어갔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하는 날 누구보다 응원했던 친구고, 그 결정이 내려졌을 때 가장 먼저 알렸던 친구다.

프랑스에 도착하던 날은 5월 27일 화요일. 데리러오겠다는 말에 평일이라 부담스러우면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너 온다고 일주일 휴가썼어.”

목요일은 법정공휴일, 토요일부턴 쉬니까 보통 금요일도 쉰다. 그래서 월, 화, 수에 휴가를 썼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물론 7월 말부터 8월까지는 4주 간의 여름휴가는 별도다.

결국 그의 휴가로, 누구보다 여유롭게 우리는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을 함께 걸었고, 그와 그의 아내가 만든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도 있었고, 그의 세 살짜리 딸과 함께 센 강을 거닐 수도 있었다. 그렇게 여유롭게 파리를 즐길 수 있었던 건, 하루에 30유로씩 하는 파리의 민박비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데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한 관광 코스를 짜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친구의 여유로움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무척이나 편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알렉스와의 여유로운 일주일이 지나고, 어학원을 등록해놓은 도시 후아이양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은 메트로 파업으로 매우 험난했다. 알렉스 일가족이 내 캐리어와 이민가방을 들고 몇 번이고 버스를 갈아타고 승강장까지 열심히 뛰어서야 겨우 후아이양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이것이 프랑스에서의 첫 파업 경험이었다. 


후아이양, 나는 이 도시가 ‘부산’ 정도일 줄 알았지, 땅끝마을 ‘해남’ 같은 느낌일 줄 몰랐다. 느릿느릿 걷다보면 한 시간만에 도시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도시. 예쁜 해변이 있어서 여름에 관광객들이 몰리고 은퇴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살고 있는 도시. 이건 뭐, 한국에서의 시간이 초 단위로 흘렀고 파리에서의 시간이 분 단위로 흘렀다면 여기선 월 단위로 흐르는 느낌. 마트에서 한참이나 내 차례를 기다려도, 앞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종업원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누구도 불쾌해하며 시계를 쳐다보거나, 빨리하기를 종용하지 않는다. 


은행을 한 번 찾아가기만 하면 은행 계좌개설에서 체크카드, 현금카드까지 다 만들 수 있는 우리나라 은행과는 달리, 여기는 계좌를 하나 만드는 데도 대단한 인내를 요한다. 먼저 은행을 들어서면 길게 늘어선 줄을 서야한다. 그 줄을 한참이나 기다리면 그제서야 용무를 묻는다. 계좌를 열고 싶다는 용무를 전하면 기다리라고 한다. 기다린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용무가 뭐냐고 묻는다. 또 이야기한다. 또 기다린다. 그러면 ‘만날 약속’을 잡아줄테니 그때 다시 오라고 한다. 수요일에 갔는데, 약속 날짜는 금요일이다. 모든 것이 만날 약속을 잡고, 그 후에 자신의 용무를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우리가 흔히 ‘랑데뷰’라고 발음하는, ‘항데부(rendez-vous)는 만남 또는 그 약속을 뜻하는 단어다. 병원도, 대학교 교수님도, 공무원을 만나는 데도 보통은 이런 절차를 거쳐서 만난다.


그렇게 은행 직원과 면담을 갖는데도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은 복잡하다. 신분증만 필요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권사본, 비자사본,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증명서도 필요하다. 그런 서류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몇 번이나 헛걸음해야하는 상황이 생긴다. 또,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수십장의 확인서에 사인해야 하고, 내 필체를 증명해야 한다. 서류를 건네고 사인할 곳만 알려주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직원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에게 이 서류는 어떤 서류인지, 당신이 무엇에 동의하고 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렇게 수십장의 확인서에 사인하고나면 일주일이 지나야 은행에 제대로 가입되었다는 서류가 우편으로 도착하고, 열흘이 지나면 은행 현금카드를 받으러 직접 은행에 가야한다. 비밀번호는 그 후에 우편으로 다시 배달되었다. 이 모든 서비스를 위해 나는 매달 8유로의 은행 계좌비를 내야하며, 이사를 갈 때는 집 근처 지점을 ‘내 지정 은행’으로 다시 등록해야 한다. 


저녁 8시면 문을 닫는 마트에서 가장 분주함이 느껴지는 시각은 문 닫기 10분 전. 곧 문을 닫으니 얼른 나가라고 세상 부지런하게 알린다. 점심시간에도 문을 닫고(무려 12시 30부터 15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1시에 닫는다. 나름 후아이양 시내에서 가장 크고 다양한 재료를 살 수 있는 곳인데, 세 번 가면 두 번은 닫힌 문을 허탈하게 바라보는 일들이 많아 백팩에 물과 식자재, 와인을 쑤셔넣고 자전거를 타고 낑낑 대며 돌아오곤 한다. 일은 일찍 마치는데, 여름의 프랑스는 해가 너무 길어서, 심지어 하지에는 11시가 되어도 훤하기만 했다. 시간은 그렇게나 많은데 할 일이 없는 낮 같은 밤, 나는 밤 11시까지 문을 여는 한국의 대형 마트들과 24시간 편의점을 그리워하며 울었다. 


그런 후아이양에 에스토피아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친구가 놀러왔다. 드디어, 이 작은 도시에도 한국인이 나 말고 한 명 더 생기는 거다. 드디어 한국어로 얘기할 수 있어. 친구가 도착하기로 한 시각에 역으로 갔는데, 역에는 들어오는 열차도, 출발하는 열차도 없이 휑-했다. 알림판에는 오후 4시40분에 도착 예정이었던 열차가 5시20분에 도착한다고 나와있었다. 5시 30분 경, 역 앞에 왠 버스가 도착했고 친구는 거기서 내렸다. 


그렇다. 그건 6월 21일까지 11일째 계속되고 있는 프랑스 철도노조의 파업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출발한 친구는 후아이양과 가장 가깝게 고속열차 TGV가 연결된 니옷(Nirot)까지 TGV를 타고왔고, 니옷에서 후아이양까지 연결하는 기차 TER이 운행하지 않아 3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온 것이었다. 다행히 파리와 큰 도시들을 이어주는 TGV는 70~80% 가량 정상운행하고 있지만, 작은 도시를 오가는 TER은 운행을 멈춘 것이다. 이것이 내가 겪은 두 번째 프랑스 파업.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 시간 정도는 빠른 대처였다.)


그렇게 힘들게 온 친구와 근처 도시에 있는 동물원에 가려고 관광안내소에 들러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좌절을 금치 못했다. 내일은 일요일이라서,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일요일이라도 어떻게 도시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을 수가 있는 거냐고 따져묻고 싶었건만, 분명 어깨를 으쓱하고 말겠지. 

결국 나는 내 자전거를, 친구는 자전거를 빌려서 호기롭게 출발했다. 해안 따라서 가면 되지 뭐. 자전거를 타고 가는 데만 두 시간, 오는 데만 한 시간 반 걸렸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됐을 때는 엉덩이가 너무 아파 길거리에 털썩 주저 앉아서 진지하게,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했다. 가는 길에 워낙 진을 빼서 무슨 정신으로 동물원을 돌아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낚시꾼들이 야영하곤 했던 집들을 구경하며 자전거를 타던 그 해안은, 잊지 못하겠다. 


그렇게, 힘들게 후아이양에 와서 고생한 친구는 더 힘들게 갔다.

친구가 다음 여행지인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하는 날을 하루 미루기로 해 기차역으로 갔는데, 역에 직원도 사람도 한 명도 없는 풍경에 불안이 급습했다. 파업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일하게 그 역에서 우리를 반기는 자동 표 발매기 앞에서 스트라스부르행 표를 겟했다. 떠나는 날, 석연찮은 작별인사를 하고 친구가 역으로 출발했는데, 친구는 곧 다시 돌아왔다. 기차가 없어 다음날 떠나게 됐다며.


그래, 프랑스는 그런 나라다. 주당 서른다섯시간을 일하는 나라, 일년에 5주의 유급휴가를 받는 나라, 점심시간이 한시간 반에서 두 시간인 나라, 파업이 밥먹듯 일상화된 나라. (나중에 보니 파리의 시간은 후아이양의 시간과는 달랐다.)


수업시간에 각 나라의 휴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가, 나는 일할 때 일년에 2주 정도의 휴가를 받았었다고 설명하자, 프랑스어 선생님은 “오, 일년에 2주! 프랑스는 분명 파업이 일어날 거야!”라고 말했다. 프랑스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동아시아 3개국이 일 지독히 하는 나라로 정평이 나있었다.


점점 그 느림에 적응하며 급할 것 없이 생활하고 있다.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해변에 나가 오랫동안 광합성을 하고 있기도 한다. ‘일해야 한다’거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나친 강박이 누구에게서도 느껴지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이도 없는 도시. 언제나 할 일의 더미에 허덕이던 한 한국인으로서는 이 넘쳐나는 여유가 너무 값진 한 켠, 분에 넘쳐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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