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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빈 Sep 06. 2020

파리에서 집 구하기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좀비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한국 커뮤니티는 물론 프랑스, 중국 사이트까지 죄다 뒤진다. 그러다 보면 가격이 합리적이고 학교가 가까우면서도 위험하지 않고 거주기간도 맞는데다 가구까지 갖춘 집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메일과 전화를 이용해 집주인에게 절절한 구애를 한다. 그러나 대개 10개의 메일에 하나의 답이 올까 말까 하는 상황에다, 얼른 예약 하기 위해서 보증금을 입금하라는 사기는 판을 치며, 외국인에게는 집을 안빌려준다는 답변같은 걸 받을 땐 진짜 힘이 축 빠진다.


실제로 집을 방문하다 보면, 6평도 안 되는 방에 가림막도 커튼도 없이 배변기가 떡하니 놓여있질 않나, 조금 괜찮은 방은 월세 백만 원을 훌쩍 넘겨버리기 일수니, 실제로 돈이 돈 값을 못하는 상황도 허다하다. 가끔 집도 마음에 들고 가격도 합리적인 곳을 찾아,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하노라면, 집주인은 당신의 뜻은 잘 알겠지만 나는 30명의 후보자를 다 만나보고 결정하겠다며 단호하게 말한다. 


넓디넓게 팽창하는 한국 도시와는 달리 실제로 서울의 세 개의 구 정도밖에 되지 않는 파리엔, 고층건물도 발견하기 힘들고 파리 중심으로 갈수록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해있다. 이런 곳에서 내 몸 하나 누일 곳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 다들 파리가 거주지원금 준다는 말만 하고, 이렇게 집 구하기 힘들다는 말은 안 한걸까. 


파리에서 집을 구하면서 발견한 특이한 점 중에 하나는, 시내에 있는 한 건물 안에 너무도 다양한 형태의 거주공간이 따로 마련돼있다는 거다. 대개 한국의 아파트는 아파트 자체가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것에 반해서. 예를 들어 ‘롯데캐슬’이나 ‘자이’ 같이 한 브랜드의 아파트가 모두 똑같은 환경에, 크기에, 기본적으로 같은 인테리어를 제공하는 것처럼.  반면, 프랑스는 한 건물 안에 들어가면 한쪽으로는 엘리베이터에, 유럽 영화에서나 볼 법한 으리으리한 대리석 계단으로 된 부분이 있는가 하면,  한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은 가파른 돌계단에 엘리베이터 없이 6-7층까지 걸어가야 하는 부분이 따로 나뉘어있다. 이런 방은 ‘하녀방’이라고 불린다. (물론 내가 간 쪽은 후자다.) 그러니까, 파리 아파트는 그 안에 당도하기까지 어떤 집을 만나게 될지 전혀 상상할 수 없다. 


그런 파리에도 부촌과 빈민가는 나누어지게 마련인데, 파리의 북쪽 18구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들 말한다. 내가 다닐 대학이 있는 파리 외곽의 도시 생드니(Saint-Denis) 역시 “아랍과 흑인들이 너무 많다”며 피할 것을 종용한다. 따지고 보면 나도 이곳에서 집 없어 서러운 이방인인데 그런 인종차별적인 선입견을 갖는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 혈혈단신 위험 지역에 살면서 속으론 벌벌 떠는 투사가 되고 싶진 않은 마음. 


위험하지 않고 살 만한 곳이라는, 한정된 조건 안에서 좋은 집을 구하려고 아등바등 하다 보면, 자본의 힘을 실감한다. 돈 있는 자들의 세상은 정말 수월하겠구나 싶은 생각부터 시작해서, 로또 한 방이면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고민이 해결될 것만 같다. (왜, ‘파리도’ 이럴 거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러나, 우리는 대개 가난하고, 미래도 불투명하며, 돈에 대한 고민을 원죄처럼 안고 살고 있다. 뮤지션 김일두의 노래처럼, 돈 없이는 자유를 말할 수 없는 걸까. 그냥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통장에 돈을 모으지 말까.*   

김일두의 노래 <답>(이곳에선 돈 없이 자유로울 수가 없네요. 돈 없이 자유를 떠벌리지 마세요), <No job no truth>(I can not save money I don't know when I die)의 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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