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먼 곳으로 훌훌 떠나버리고 싶은 갈망, 비하만의 시구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아무곳이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빈 위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슴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전혜린 <먼 곳에의 그리움>
여행에 대해 쓴 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설렘’, ‘새로움’, ‘두려움’, ‘불안’ 같은 감정으로 말하지 않고 ‘그리움’이라고 표현했다. 이 그리움은, 단순히 ‘여행의 경험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운명적이고 시적이다. 고등학교 때 처음 전혜린의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어떤 ‘먼 곳’에도 ‘홀로’ 존재한 적도 없었으니까. 그리워할 ‘ 먼 곳’이 없던 고등학생의 마음에 이 글이 어떻게 마음에 남았을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이 속한 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 욕망은 내 존재만이 오롯이 나를 구성하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나 자신을 어딘가에 던져버리고픈 욕구가 뒤섞인 감정이 아닐까.
이 욕망은 양가적이다. 한 축의 나는, 혼자이고 싶다. 내 언어가 들리지 않는 곳,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 속, 맡아보지 못했던 냄새와 익숙해지지 않는 온도에서 오롯이 혼자임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 대한민국이라는 환경에서 멀어져서, 익숙한 사람들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어떤 곳에 속했던’ 나와 그 바깥의 나를 생각해보는 것. ‘원래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층층을, 낯선 곳에서 바라보는 것. 이런 순간에는 오래전에 내 마음을 스쳤던 생각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글들에 마음을 뺏기기도 한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장에 끄적이기도 하고, 익숙한 곳을 그리움으로 떠올린다.
이렇게 혼자일 때, 나는 누구보다 열린 마음이 되어서 낯선 것을 받아들인다. 나 자신을 낯선 곳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키고, 그 땅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지나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외로움이 묶어주는 끈으로 친구가 된다. 각자 살아온 삶과 토양에 대해 이야기하고, 새로운 곳에서 발견한 점들을 함께 바라본다. 이런 받아들임은 혼자일 때 가능하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의 익숙함에 안착할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먼 곳을 지속적으로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이것은 절대적인 사람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후자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