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볼루셔너리로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파리에 못 가서 안됐네. 기대가 컸을 텐데. 오해 말고 들어. 나도 거기 가봤지만 여기와 다를 거 없어”
“꼭 파리를 원했던 건 아냐”
“그냥 벗어나고 싶었군”
“속하고 싶었어.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난 그 이도 그럴 줄 알았지, 근사한 삶을 꿈꿀 거라고.”
- 영화 <레볼루셔너리로드> 중
마음 한 켠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스물일곱에 프랑스로 떠나, 1년 언어연수를 하고 2년 석사하고 돌아와야지, 서른살에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거야, 더 나은 내가 되어서. 그러나 마음 한 켠, 깊숙한 곳에 나는 프랑스가 내 삶의 종착지라고 생각했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로 떠나는 사람들의 특수성이 생기는 것 같다. 어쨌든 프랑스를 선택하는 이유는 미국이나 영국을 선택하는 이유랑은 다른 것이다. (일반화하긴 힘들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 공부를 한 후에 한국에 돌아와 좋은 회사에 들어가거나 교수가 되는 장밋빛 인생을 꿈꾼다면, 프랑스나 독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의 삶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로 떠난 많은 예술가들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철학을 공부하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추천서를 부탁드렸던 교수님은 미국에 가지 않고 프랑스로 가는 걸 응원하면서도 걱정했다. 레비나스와 미셸 푸코, 데리다를 좋아하는 분이었지만 학계의 이단아처럼 취급받는 프랑스로 떠나는 날 걱정했다. 프랑스는 이처럼 제1세계에 속하는 것 같은데, 또 묘하게 제1세계에서 비켜서있는 느낌이 있다. 이런 이미지는 프랑스를 더욱 정착지처럼 만드는 효과가 있다.
영화 <레볼루셔너리로드>에서, 파리는 윌러 부부가 찾는 이상향으로 그려진다.
아버지가 평생을 일하던 맨하탄의 회사에서 월급쟁이로 살고 있는 프랭크 윌러는, 아버지처럼 아무런 업적도 흔적도 없이 잊혀진 사람이 될까봐 두렵다. 여배우를 꿈꾸던 에이프릴 윌러는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가정주부로 살아가면서 권태를 느낀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보다 안정적인 이 부부는 내면에서 존재 자체로부터 불안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프릴에게 찾아온 이웃은 그녀가 베푼 호의에 고마워서 이렇게 말한다.
“윌러 부부는 정말 특별해요. ‘이 곳’ 사람들과는 달라요.”
이 특별하다는 말이, 에이프릴의 머릿속에 계속 남는다. 뉴욕 교외의 ‘레볼루셔너리로드’에 위치한, 안락하고 쾌적한 집은 자신이 속할 곳이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라고 생각하게 되고, 윌러 부부는 그 종착지를 ‘파리’로 정한다.
프랭크 윌러가 군 복무 중 머물렀던 파리는, 벨 에포크 시대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는, 전 세계 예술가들이 찾았던 파리는 특별했으니까. 뉴욕 맨하탄의 빠른 리듬과, 미국 교외의 횡하고 생기없는 분위기와 달랐으니까.
나도 프랭크처럼 ‘무엇이 되지 못할까봐’ 불안했고, 에이프릴처럼 ‘특별하다’는 말에 반응했다. 파리처럼 특별한 곳에 가면, 나 자신도 특별한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정말로 파리에서 잘 지낼 거라고 생각했고, 파리는 나와 맞을 수 밖에 없다고 믿었다.
윌러 부부는 끝끝내 파리에 가지 못했고, 에이프릴은 프랭크의 변심과 그의 이기적이고 강압적인 태도에 결국 목숨을 끊었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의 나는, 에이프릴에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한 나머지 어떤 것도 내 결정을 막을 수 없도록, 내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갈 수 있도록, 어떤 것에도 익숙해지지 않기로 했다. 무엇이든 경험해봐야 하는 경험주의자이자, 한 자리에 머물러있기보다 언제든 변화하려고 하는 나 같은 사람은 기동성을 위한 마음을 길러둔다.
부산시청에서 일하던 3년. 나는 일을 하면서도 언제든 그만둘 수 있도록 돈을 꼬박꼬박 모았고, 자동차 같이 오래 두고 쓸 비싼 물건을 사지 않았다. 10년 넘도록 넣어아햐는 연금이나 보험은 들지 않았다. 거주용 오피스텔을 샀지만, 언제든 팔거나 내놓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당시 남자친구와 사귀기 전에, 나는 프랑스에 가고 싶은 마음을 전했고, 사귄지 일 년쯤 되던 날 프랑스어를 배울 것이고 프랑스를 갈 준비를 시작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나는 남자친구를 많이 좋아했고, 마음이 아팠지만, 프랑스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언제나 이런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보다 나쁘더라도 지금보다는 나을거야”(새의 선물)라고 말했던 은희경이나 위험한 사랑에 빠져들곤 하는 아니 애르노, 사랑을 선택하고 파국을 맞이하는 안나 카레리나나 보바리 부인 같은 이야기. 변화를 위해 길을 나서는 모든 이야기들. 길 위에서 펼쳐지는 삶은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고 때론 후회로 점철되지만, 나는 인생이 그런 거라고 믿었다. “발 없는 새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을 때, 그것이 죽음(아비정전)”이듯이, 인생은 평생 날아가는 것이라고. 내가 어디로 가게 될 지, 어떤 모습을 띄게 될 지 예측할 수 있고 예상하는 건 재미가 없다고. 그래서, 나는 내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나를 내던졌고, 프랑스로 떠날 때는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