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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Nov 29. 2023

일 잘하는 이커머스 종사자들 특징

01 . 콘텐츠 쪽 일을 6년 하다가 옮긴 커머스 업계에서 일을 한 지도 어느덧 6년차가 됐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몰라서 � 이런 상태로 시간을 보냈던 게 2018년인데 어느덧 2023년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02 . 6년째 일을 하다 보니 다양한 직군과 협업 경험을 쌓아왔고, 각 직군에서 어떤 역량이 필수적일지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게 됐다. 커머스 브랜드를 운영하는 내부로 들어갔을 때, 직군을 크게 두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번째는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조직(세일즈/판매/기획/프론트엔드). 두번째는 판매행위를 위한 제조/물류/시스템 구축 등을 담당하는 유지보수 기능(백엔드) 내가 주로 몸담았던 곳은 판매 조직인데, 이 조직은 상품기획자를 중심에 두고 많은 일들이 이뤄진다.

03 . 그래서 상품기획자-마케터-디자이너의 삼각구도가 어떻게 구성되고 협의되느냐에 따라 브랜드 운영이 많이 달라지게 된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같은 목표를 지니고 있지만 커머스 브랜드에서 각 직군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로직은 달라서 이 부분을 서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가 좋은 협업을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프론트에서는 MD/콘텐츠 크리에이터(PD/콘텐츠마케터 등) 의 직군도 있지만 큰 카테고리로 본다면 저 세가지 범주 내에 들어갈 수 있겠다.


04 . 상품기획자나 마케터의 주요 역량으로 많은 분들이 '시장을 보는 눈'을 꼽지만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이견이 있다. 시장을 보는 눈은 팀으로 일하면 충분히 공유받을 수 있고 대체될 수 있다. 이 요소는 마케터라고 해서 더 가지고, 기획자나 디자이너라고 해서 덜 가지는 게 아니다. 그냥 모두가 공통 교양으로서 갖춰야 한다. 시장을 보는 눈. 잠재고객에 대한 이해력과 상상력, 숫자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 (복잡한 분석이 아니라 숫자의 증감,비율에 대한 이해,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 등)은 좋은 역량의 공통된 전제조건이지 특정 직군의 역량이 아니다.

05 . 그렇게 봤을때 기획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은 인내력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 중요한 건 항상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현이고, 공장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아니라면 상품의 구현은 결국 다른 사업자(공장)을 붙들고 해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제조는 한번 비용이 들어가서 생산이 끝나면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결정의 무게가 커진다.

06 . 제품을 기획하셨거나 옆에서 보신 분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겠지만 제조가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내용을 100% 구현해줄 공장은 일단 세상에 없고, 그나마 구현할 수 있는 곳을 만난다면 원가의 압박 하에서 무엇을 포기할지를 정해야 한다. 포기해서 스펙을 정했다 하더라도 원래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07 . 우리 공장이 아니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샘플을 무제한으로 뽑을 수도 없고, 우리랑만 거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알수 없는 이유로 샘플링이나 납기가 밀리기도 한다. 제품이 기획으로부터 3개월 내에 나오면 업계에서는 정말 빠른 기획자로 대접받는다. 그만큼 과정도 느리다. 

08 . 공장 담당자나 대표님과 화내고 웃고 울면서 우리가 원하는 스펙을 만들어가는 이 과정은 정말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고, 많은 상품 기획자들이 이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개발이나 구매팀이 따로 있는 회사라면 좀 덜하겠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상품 기획자들에게는 인내력과 협상력의 가치가 다른 직군보다 훨씬 높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09 . 두번째. 이커머스 브랜드라는 특정 카테고리에서 마케터의 주요 역량은 뭘까?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시장을 보는 눈'이라는 게 공통 교양이라고 전제한다면, 마케터의 역량은 상품기획자랑 조금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 4P(Product,Price,Promotion,Place)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빠른 실행과 유지보수 능력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마케터의 업무는 많은 경우 가역적이다. 광고비는 조정될 수 있으며 소재는 테스트할 수 있고 타깃과 소비자는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 Trial & Error를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조건이 돼 있고, 또 그런 것들을 많이 해야 한다. 상품기획자처럼 한번에 몇천만원 단위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오늘은 싸게 팔아보고 내일은 비싸게 팔아보면서 영점을 맞춰나가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10 . 판매의 흐름을 보면서 빈 곳은 채우고 튀어나온 곳은 깎고, 잘 되는 건 더 잘될 수 있는 수단들을 강구해서 실현한다. 소비자가 보이는 반응을 체크해서 유리한 쪽으로 구매 과정을 짜거나 메세지를 던진다. 그래서 나는 이커머스 브랜드 마케터들은 기본적으로 자사몰을 포함한 판매채널의 MD 역량을 같이 갖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모객을 했으면 구매를 시켜야지. 광고로 데려온 사람이 우리 가게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조정하는 것이 필수다. 구체적으로는 프라이싱이나 상품 묶음구성, 혜택 구성, 상세 페이지 구성, 프로모션 기획 등을 적극적으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 

11 . 대신 이 직군은 (나도 그렇지만) 끊임없는 조정,숫자,흐름에 시달리는 직군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추세나 흐름을 보는 노력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 좋게 말하면 빠르고, 나쁘게 말하면 가볍고 참을성이 없는 직군이다 �

12 . 오늘의 적자를 빨리 메꾸기 위한 수단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적자가 시즌의 이슈인지, 작년에도 반복됐는지, 오늘 하는 액션은 언제 효과가 날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실물 상품의 개발/개선은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상품의 속도에 맞춘 계획을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13 . 세번째. 디자이너의 주요 역량은 어떻게 다를까. 디자이너는 세 직군 중 가장 전문직이다. 또, 패키지 디자이너, 웹 디자이너(상세페이지), 브랜드 디자이너 등의 역할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커머스 브랜드에서 디자이너의 제1 역할은 '쾌적한 구매를 위해 시각요소를 기획하고 최적화하는 작업' 라고 생각한다. 

14 . 모든 활동은 결국 장사를 잘 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시각적 요소들 - 구매 사이트부터 결제 과정, 배송되는 패키지까지 - 을 매끄럽게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제 1 업무라고 생각하고, 동료들에게도 그런 것들을 많이 요청드렸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별로 재미없는 동료였을 수도 �

15 . 이 목표를 위한 역량들은 무엇이 있을까? 잠재고객의 구매 프로세스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 쾌적함이라는 목표와 디자이너가 잡은 컨셉 하에 핵심 요소들을 매끄럽게 배치하는 능력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컨셉의 유지라는 점에서는 기획자가 요구하는 인내력이 필요하고, 최적화라는 점에서는 마케터의 역량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내가 겪었던 뛰어난 디자이너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의 디자인 결과물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리뷰하되, 핵심적인 컨셉에 대한 집중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16 .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역량, 서로 요구되는 다른 역량, 각 직군이 처한 맥락에 따라 거스를 수 없는 업무의 속도나 특성을 서로 이해하지 않고 있으면 업무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왜 상품이 제때 안나오지? 왜 마케팅이 이렇게 중구난방 같지? 디자인 결과물은 언제 나오지? 그리고 동일 직군끼리 모여있으면 이런 상황은 더 심화되기 십상이다. 어쨌든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자신과는 다른 사람에게 편견이나 틀린 가설을 갖기 마련이고, 이건 좋고 나쁨을 떠나 사람의 기본 속성이니까.

17 . 여기에 적은 기준들은 그저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 기반한 작은 기준이다. 누가 볼 때는 저 기준들이 터무니 없을 수 있지만, 나 개인으로는 이게 있기 때문에 다른 직군과 일을 할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당연히 틀린 부분도 있을 것이고. 중요한 점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직군 외 다른 직군의 업무조건,제반상황,주요 역량을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것이 항상 일의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저 사람도 열심히 하겠지'라고 공감해주는 게 아니라, 나와는 다른 직군이 가진 한계성과 가능성을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직군에게도 내가 생각할 때 중요한 요청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서로 논의해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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