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숨은 문, 경복궁 수문

by GoGo자형


경복궁 러닝의 즐거움과 위험

나는 평소 경복궁을 달린다.

집과 가까워 이동이 간편하고, 달리다가 신호등에 멈출 필요가 없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게다가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달리는 재미를 더해준다. 물론 경치는 두말할 필요 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관람객이 많은 시간은 피해야 하는 단점도 있다.

바닥이 돌이라 미끄럽기도 하고 울퉁불퉁해서 속도를 내기가 어렵고 위험하다.

그럼에도 경복궁은 내가 가장 자주 찾는 러닝 스폿이다.

1757659289542.jpg 경복궁 러닝 장면(촬영:gogo자형)

위험하다 했는데 벌어진 사고

2024년 4월, 익숙한 경복궁에서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광화문 인근을 달리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입술은 터지고 얼굴은 긁히고 손을 짚는 바람에 손목 인대가 다쳤다.

그 사고 이후 한동안 달리지 못했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을 때도 수문 근처를 지날 땐 늘 조심스러웠다.

부상은 러너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1757659285710.jpg < 넘어져서 부상 입은 팔 >


궁궐의 숨은 문, 수문

그런데 왜 그 구간의 바닥만 다른 걸까?
바로 여기가 경복궁의 수문 자리이기 때문이다.

경복궁에는 물이 나가는 수문과 물이 들어오는 수문이 있었다.

물 나가는 수문

광화문 좌우 수문: 궁 안의 물을 외부로 내보내는 문. 동쪽 수문은 복원되어 투명 덮개로 확인할 수 있다. 서쪽 수문은 복원되지 않아 현재는 볼 수 없다.

광화문 수문 표시.jpg < 광화문 동측 수문 >
20250921_153209.jpg < 복원된 광화문 동측 수문 >

경회루 쪽 수문: 경회루 연못의 물이 배수되는 수문으로, 현재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담장 밖 하수관로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물 들어오는 수문

북쪽 신무문 근처 수문: 북악산에서 흘러 지금의 청와대를 지나 경복궁으로 물이 들어오는 문. 지금은 지하에 묻혀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전각과 장엄한 담장 아래, 이렇게 작고 소박한 물길이 숨어 있었다.

궁궐의 숨은 문, 수문.


러너의 기억과 궁궐의 숨은 문

그 앞에서 철퍼덕 넘어졌던 기억이 내 몸에 남아 있듯, 궁궐의 담장 아래에도 오랜 흔적이 숨어 있다.

오늘도 나는 경복궁을 달린다.

수문 앞을 지날 때면 자연스레 속도를 늦추고,

발밑을 살피며 지난 기억을 떠올린다.

그 작은 흔적이, 궁궐의 시간과 맞닿아 있음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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