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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 상담사 Feb 02. 2022

상담자 대학원생의 집단상담 3편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 대하여 

1편과 2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ggulsim/52


https://brunch.co.kr/@ggulsim/53


#1. 집단원 중에 한명이 어쩌다가 이런 집단상담까지 받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나눴었다. 그 질문이 나에게도 울림이 있어 내가 말할 순서가 되었을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꺼내놨다. 


왜 여기까지 왔냐고 물으신다면.. 남부럽지 않게 불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뭐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닌데 집단원도 리더들도 한바탕 크게 웃었다. 와닿으니까 웃었겠지 싶다. 우리는 가끔 자신이 말하지 않은 적나라한 진실을 남이 말할때 웃기 마련이니까. 


이 업계는 ACEs(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아동기 역경 경험) 마저도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바닥이다. 이해가 잘 안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된다. 빚도 자산이지 않나. 큰 빚이 있다는 건 대출을 할 수 있는 신용이나, 능력이 있다고 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것처럼 상담자에게 역경 경험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걸 감내하는 마음의 그릇이 크다고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쨌든 남부럽지 않게 불우해서, 치열하게 상담하고 분석하게 되었다면 뭐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하자. 


#2. 12월 초에 집단 상담이 한 번 있었고, 그 다음 집단상담은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시작하는 2박 3일 일정이었다. 리더와 포옹하면서 "크리스마스 때 봐요, 리더" 라고 인사했다. 그러자 리더가 "무슨 연인이 하는 말 같다 그지? 크리스마스 때 보자는 말 말이야" 라고 하길래 "그러네" 뭐 이런 농담을 나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집단원이 "정말 둘이 눈꼴시려서 못봐주겠다"며 장난으로 투덜거리는 말을 했다. 물론 농담이고 장난이지만 집단원 사이에 시기질투가 드문 일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집단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고, 집단원들의 평균 나이보다도 한 2 표준편차 정도는 떨어져 있는 편이라서 리더의 애정에 대해서 질투받는 대상은 아니다. 그냥 그러려니 인정해주시는 것 같다. 남에게 관심이 없는 둔한 나도 이유는 모르지만 리더가 날 참 아낀다는 인상을 받는다.  만약에 집단에서 다 내 또래인데, 리더가 나를 이렇게 예뻐했으면 아주 볼만했겠다 싶다. 아아아주 불편하고 힘들었겠지. 젊어서 좋다 사람들의 애정을 이렇게 마음껏 받을 수 있어서.  참 복이 많아. 


12월 집단 하기 며칠 전엔가 후배가 “선생님은 어떻게 계속 일이 몰아치는 상황을 견디고 있냐”라고 물어봤는데, 이런 사랑으로 견디는 것 같다. 나보다 나를 더 수용해주는 사람들, 젊음 하나밖에 없는 나를 젊음 하나로 예뻐해주는 사람들. 나보다 나의 미래의 찬란함을 확신하고 축복해주는 사람들. 인생이 고되고 시릴 때마다 생각날 것 같은 사람들의 사랑 가득 담긴 눈빛들, 얼굴들, 따뜻함들로 삶을 채워간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고 사랑받는 감각들로 살아가니까. 


#3. 캐나다에 잠시 살았던 시절을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쉬었다. 캐나다가 너무 그리워서. 


아. 죄송해요 제가 향수병이 있어서요. 오 캐나다*


*오 캐나다, O Canada는 캐나다 국가의 첫 가사이다.


#4. 집단이 연말에 있었기에 뒤풀이에서 새해 목표를 집단원과 나눌 기회가 있다. 그 당시 나는 입맛도 없는데다가 불면증과 변비에 시달리고 있었다. 성욕을 채우지 못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기본적인 4가지 생리적 욕구 - 식욕, 성욕, 수면욕, 배설욕 -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았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2022년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그리고 자주 즐거운 섹스를 할거야! 


이걸 들은 리더가 "너무 진부해~"라며 야유하는 거 아닌가! 

발끈한 나는, 

"진부해? 이게 뭐가 진부해! 가장 중요한거라서 말한건데!! 리더, 요새 나한테 왜 박해? 왜케 박하게 그러냐구!" 그러자 리더가, 


" 난 잔소리 많은 엄마니까" 


 요새 리더가 나한테 스스로를 엄마라고 지칭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잉? 하고 놀라다가도 뭐 그러고 싶은가보지.. 하면서 넘어갔었다.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면 정말 말대꾸를 못하겠다. 


그러다 집단 마지막 날에 리더가 나를 1~2분 정도 가만히 보다가. 


"계속 네 얼굴을 보니까 그 얼굴 안에 내 얼굴이 보여. 닮은 거 같아"


내가 살면서 이보다 애정어린 말이 있었을까. 부모를 포함해서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이렇게 사랑이 담긴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내가 당신을 닮았군요. 


리더가 내 잔소리 많은 엄마니까 닮았지.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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