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각
남편은 후각이 강아지들처럼 특별하게 발달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익숙하지 않은 냄새에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특히 예상하지 못했던 냄새에 적응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십여 년 전 한국에 와서 나는 아침으로 고등어도 구워 먹고 된장도 먹고 하는 게 너무 좋았는데 남편은 분명히 고등어를 잘 먹었지만, 토스트를 먹어야 하는 아침 시간에 나는 고등어 냄새는 견딜 수 없어했다.
고등어 반찬을 기대할 수 있는 점심때는 괜찮지만 토스트 냄새를 기대하는 아침으로는 절대 구역질이 나서 비록 같은 냄새지만 견딜 수 없어했다. 내가 고등어를 데우기라도 하는 날에는 방문을 닫고 아예 나오지 않았다. 결국 얼마 안 가 나는 아침으로 한식은 모두 관뒀다.
냄새가 지독한 것을 알고 있었거나 냄새가 강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청국장, 홍어, 블루치즈, 액젓의 냄새도 다 괜찮았지만 내가 만든 반찬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반찬의 익숙하지 않은 냄새에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가끔은 내가 식탁에서 그 반찬을 치워야 하기도 했다. 아니면 아주 눈치를 보면서 먹거나.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지만 약간의 불편함은 여전히 바탕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하지만 처음 가는 식당에서 먹는 음식의 어떤 냄새에도 전혀! 거부감이 없다. 집에서는 익숙한 맛을 기대하고 밖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맛도 기대하고 있으므로 괜찮은 것일까?
무엇을 예측하고 무엇을 예측하지 못하여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지를 나는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뜻하지 않게 하루가 망쳐지는 것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심한 불안과 약간의 틱, 거의 알아차리기 어려운 정도의 자폐성향을 가진 컴퓨터 전문가인 20대의 중혁이는 항상 음식을 먹기 전에 그 음식의 냄새를 맡아서 음미한다.
중혁이는 향수도 아주 좋아하는데 내겐 비슷하게 느껴지는 향수도 그는 다 미세하게 다르다 느끼고, 향수 종류만 수십 가지를 가지고 있다. 그 모든 향수는 제각각의 때와 장소에 따라 그 쓰임이 정해져 있다.
그는 연필의 냄새도, 샴푸나 바디워시의 냄새도 그 제품을 재구매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미각
20대 중반의 갓 군대를 제대한 희준이는 미각에 예민해서, 그의 엄마에 따르면 그는 어떤 특정한 야채나 음식은 아예 먹으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경우엔 절대로 엄마가 꼬드겨서 그 음식을 먹일 수도 없다고 했다.
50대의 현숙 씨는 바르지 못한 행동이라고 느끼면 어떤 상황에서도 가만히 넘어가는 법이 절대! 없어서 가끔 사람들과의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아주 이미지적인 사고를 하고, 귀로 들은 것은 반드시! 글로 옮겨서 눈으로 다시 보면서 정보를 처리해야 하고, 동식물에 관한 지능이 매우 높다. 그런 그녀는 한 가지 음식에 꽂히면 그 음식이 지겨워질 때까지 계속 그것만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떤 맛있는 떡이 있다면 며칠이고 그 떡만 먹는다. 체리가 맛있다면 더 이상 체리 생각이 나지 않을 때까지 먹고, 식당에 가서도 맛있는 요리가 있으면 다른 것은 거의 먹지 않고 그 한 가지만 먹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현숙 씨는 1년에 라면을 4~5번 정도 먹는데 항상 한 번에 연속으로 이어서 계속 먹는다고 했다. 즉, 뭔가가 먹고 싶으면 그 생각이 나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먹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컬투쇼에서 참외만 하루종일 계속해서 먹어서 배가 아파 병원에 갔다는 사연을 듣고 웃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은 그날만 참외를 그렇게 드셨을까, 아니면 현숙 씨처럼 라면도 연속으로 계속 끓여드시기도 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혼자 해 봤다. ㅎㅎ
3. 시각
가끔 ADHD나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사람들 중에 밝은 빛에 예민한 사람들이 있었다.
김작가는 최근에 이사를 가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 조명이었다. 집의 곳곳에 간접등을 설치했다. 김작가와 그의 중학생 아들은 둘 다 주로 밝은 빛은 사용하지 않고 은은한 간접등을 거실, 욕실, 주방, 안방 모두에서 사용한다고 했다.
자페스펙트럼이 있는 사람들의 약 50프로 정도는 형광등에 아주 예민해서 두통을 유발하기도 하고, 자폐적 행동들이 심해지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소규모의 연구 집단에서 나온 결과니 정확하게 50%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다고 하자.
이들은 형광등뿐만 아니라 눈부심에도 아주 불편해한다고 한다. 즉, 모든 사람들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노을이 질 때를 좋아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전에 눈부심을 줄여주는 오렌지 빛이 도는 안경을 항상 쓰고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그때는 그가 그냥 멋을 부리려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었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어쩌면 그는 빛에 아주 민감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에서 언급한 분들이 모두 자폐가 있거나 신경다양성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다분히 그런 성향이 있기는 하다고 나는 느낀다.
오늘 어떤 분과 대화를 하는 중에 신경다양인들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그분이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런 특징을 다 가지고 있지 않나요?"라고 하셨다. 맞다. 나도 가끔 피곤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하면 형광등 불빛이 불편하기도 하고,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어떤 특정 냄새나 미각에 예민하기도 하며, 좋아하는 음식을 지겹도록 매일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와 빈번함이 심하거나 일정한지, 자신이나 타인에게 불편함을 유발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좀 더 알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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