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리아코알라 Sep 28. 2024

핸드폰 소리나 진동 대신
불이 번쩍번쩍

어딘가에서 밝은 불빛이 번쩍번쩍한다. 


남편에게 문자나 알림이 온 거다.


핸드폰에 소리나 진동 외에도 그런 불빛이 번쩍번쩍하게 하는 기능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예전에는 자신이 아주 익숙한 이소룡 영화의 배경음악을 알림 소리로 지정해 놓더니 언젠가부턴 불이 번쩍번쩍할 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나도 시끄럽게 소리가 울리는 게 싫어서 내가 평생 최애했던 캐논의 변주곡이 울리도록 설정해 두었지만 요즘은 늘 진동으로 울린다. 


그런데 남편은 소리도, 진동도 아닌 "불빛"이다. 


익숙하지 못한 소리에 스트레스를 잘 받는 남편이 번쩍이는 불빛은 괜찮은 것 같다. 


참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리콘밸리나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기능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어디서 읽었다. 컴퓨터 전문직과 자폐적 성향은 너무 궁합이 잘 맞는 걸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혹자는 빛에, 냄새에, 촉감에 예민하다는데 남편은 냄새와 촉감에도 예민하지만 청각에도 아주 예민하다. 


아침에 일어나는 알람소리도 나는 내 마음대로 크게 하지도, 내가 원하는 소리로 지정하지도 못한다. 남편이 너무 잘 놀래고, 잠이 잘 깨서는 다시 잠들지 못하니 최대한 부드러운 소리로 조용하게 설정하고 (알람을 설정하는 의미가 있나??), 남편이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야 하면 나는 남편이 설정한 시간보다 2분 정도 후에 울리도록 해 둔다. 그땐 이미 남편은 일어나 있을 테니까. 


내가 어렸을 땐 두 개의 쇠 종을 마구마구 치며 온 집안이 떠나가라 매우 시끄럽게 울던 자명종 시계가 있었다. 그게 우리 집에 아직 있다면 남편은 다음 날 자명종이 울릴 걸 생각하며 결코 밤새 잠들 수 없으리라..



#아스퍼거 #아스피 #자폐증 #예민한 감각



이전 15화 약속장소에 훨~씬 일찍 도착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