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모국어인 남편은 영문법에 약하다
자폐증과 난독증의 교집합
아스퍼거, 즉 고기능 자폐라고 하는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이런 스펙트럼의 사람들 중에는 난독증도 종종 있는데 남편에게도 난독증이 있다는 게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종종 스펠링을 헷갈려하고, 문법 설명을 어려워하며, 어린 시절 초등 저학년이 되도록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사람들이 말을 잘 이해 못했고, 오른쪽과 왼쪽을 항상 헷갈려한다.
그런 그가 조금 전에 내게 후다닥 뛰어와서는 물었다.
- 자기야, ...diffence between you and me? you and I? 뭐가 맞는 표현이야?
- you and me..
- ok
- 자기야, 전치사 다음에는 말이야 보통 목적격이 오는데...
- 아... 나에게는 그런 말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이미 사라졌다)
이미 나에게 물어본 바 있는 질문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 off야 of야?
- 자기가 방금 나에게 물어볼 때 OOO 어브 OO이라고 했어 OOO오프 OO이라고 했어?
- 어브
- 그럼 of야. 내가 전에도 여러 번 말했잖아. 발음을 해 보면 된다고. 발음이 '어브'면 of고...
(이때쯤엔 남편은 주로 사라지고 없다)
이런 정도의 영문법은 초등학생이나 중학교 1학년쯤에서 물어볼 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남편은 석사, 박사까지 하고, 국회에서 연설문도 써주고, 베스트셀러를 내는 것이 꿈이라서 매일 소설을 쓰는데 이런 걸 헷갈려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그렇다면 그는 글은 어떻게 쓰는 것일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물 흐르는 대로 쓰는 것 같다. 그러다 아주 가끔씩 멈칫하고는 헷갈려서 '생각'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때 헷갈리는 것 같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고 난독증이 있는 미국의 시인 필립슐츠가 말했다. 자신은 책의 내용에 빠져서 자신이 책을 읽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글을 읽을 수 있지만 무언가를 "읽고 있다"는 걸 의식하는 순간 자신이 쓴 시의 단어마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그렇다. 남편도 문법을 의식적으로 공부해서 아는 게 아니라 그냥 아는 거다. 그러니 그걸 의식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정말 힘든 것이다.
남편은 내가 쉽거나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못하는 게 참 많다.
하지만 나도 남편이 일일이 짚어주지 않아서 그렇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그에게 당연한 것을 못하는 게 참 많을 것 같기도 하다. 다음엔 그 목록을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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