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 소비자 알 권리가 우선일까
여러분이 수백~수천만원 상당의 상품을 구매했는데, 상품의 상태가 정상이라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또 상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그리고 그 상품을 판매하는 시장 규모가 약 30조 원에 달한다면 말이죠.
위에 언급한 것은 한국의 중고차 시장에 대한 설명입니다. 중고차 시장은 전형적인 레몬마켓으로 불립니다. 레몬마켓은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시장을 의미합니다. 판매자는 차량의 상태를 잘 알고 있지만, 구매자는 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저품질의 차량이 고품질로 둔갑하여 거래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성은 중고차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결국 시장에 있는 양질의 상품은 오히려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저가·저품질의 상품만 가득하게 됩니다.
2024년 4월, 국내 모빌리티 스타트업에서 만든 서비스 ‘카티(CarT)’는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시장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고차의 숨은 이력과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카티 익스퍼트(CarT Expert)’를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카티는 30조 규모의 중고차 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서 논란이 된 부분은 기존 중고차 구매 시 소비자가 차량에 대한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던 ‘성능·상태 점검기록부(이하 성능지)’와 전국 차량 수리업체와 보험처리 이력을 비교하여 누락된 차량 수리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 그리고 중고차 딜러의 차량 매입 시 취득가액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업체 자료에 따르면, 이 서비스를 통해 기존 중고차 성능 이력을 검증해 본 결과 현재 중고차 시장에 등록된 차량들의 약 4대 중 1대는 성능지와 실제 수리 이력이 차이나는 것을 확인했다고도 밝혔습니다. 한국에서는 국가에서 인증한 성능점검장에서 성능지를 발행하는 것이 의무이고, 이 문서가 사실상 소비자가 차량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기존 중고차 판매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훼손된 것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단 몇천원으로 중고차 구매의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고, 실제 차량 매입 원가를 알 수 있어 합리적 소비를 할 수 있어 환영하는 반면, 딜러 입장에서는 취득가액은 영업 비밀이며, 차량 매입 후 상품화(점검, 수리, 광택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빠진 순수 매입 원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딜러들이 과도한 마진을 남긴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딜러들은 실제로 해당 자료를 근거로 계약 취소를 당한 사례들이 있다며 온라인 상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에서는 해당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오토피디아(Autopedia)’에 서비스 중단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공공데이터가 논란의 원인?
뿐만 아니라 해당 연합회는 정부에도 관련 자료를 업계에 제공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논란이 된 누락된 차량 수리 이력 확인 기능과 차량 매입 원가 확인 기능은 사실 국토교통부와 교통안전공단에서 제공하는 자동차 종합정보 공공데이터(자동차365)의 OpenAPI를 활용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공공데이터 OpenAPI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개방하여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일종의 데이터 제공 형식입니다. 공공데이터는 본래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회적 가치를 증대시키며 이를 통해 민간에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제공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공공데이터를 통해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여 소비자 신뢰를 구축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내 이해관계자 간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공공데이터를 어디까지 시장에 공개해야 하는가’ 그리고 ‘공공데이터를 통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인정 범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1년 처음 공공데이터를 개방하고 13년이 지난 지금, 공공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서비스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서비스들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혁신과 생산성을 높이는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공공데이터 관련 분쟁도 꾸준히 증가해왔습니다. 2013년 공공데이터법이 제정되고, 다음 해인 2014년 ‘공공데이터분쟁조정위원회’가 만들어진 뒤 2022년까지 총 298건의 공공데이터 관련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이번 논란도 장기화 될 경우 분쟁조정위원회에서 해결 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차량 취득가액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 자체가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지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공데이터법에는 공공데이터 이용 시 제3자의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하는 경우 제공을 중단할 수 있는 조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치 판단 또한 두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분쟁조정위원회에 가야만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2022년 공공데이터 활용 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양한 목적으로 공공데이터를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기업은 총 10,624개였고 그 중 스타트업이 직접 활용한 사례는 1,834건에 달했습니다. 2024년 현재는 활용 건수가 더 증가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공공데이터를 제공하는 정부기관도 보다 양질의 데이터를 개방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3년 처음 공공데이터를 개방한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점은 공공데이터가 공급자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에 활용하기 어려운 저품질의 데이터가 양산된다는 논란이 수년 간 지속적으로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공공데이터 개방은 공무원들의 이해도 부족과 겸업으로 인한 직무 수행 한계로 인해 IT분야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공데이터 방중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주로 공공데이터가 가공되고 개방되었던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지난 해 9월 정부에서는 2026년까지 공공데이터포털을 246억 원을 들여 전면 개편하여 실제 공공데이터를 사용하는 민간 기업 및 사용자 중심의 공공데이터로 개선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필자 또한 공공데이터 인턴에 참여했던 경험을 되짚어보면 사용자 중심의 공공데이터 개방이 해답일 것이라 판단됩니다.
카티와 다른 스타트업들이 공공데이터를 통한 비즈니스 사례에서 보듯이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비즈니스는 스타트업에게 있어 양질의 데이터를 얻기 힘든 소규모 스타트업들이 적은 비용으로 사회구조적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들 또한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위해 공공데이터 활용에 대한 법적 리스크를 보다 더 꼼꼼히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공공데이터의 활용이 가져다주는 기회가 있지만, 그만큼 법적 책임과 윤리적 문제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스타트업은 공공데이터 활용의 전략을 더욱 세밀하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데이터 개방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데이터의 질을 개선하는 노력을 지속함으로써, 스타트업은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법적인 준비와 윤리적 고려는 스타트업의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