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중심가를 벗어나서
교토는 원래 관광객이 많은 도시긴 했으나 이곳만의 색이 매우 짙어서 쉽게 혼잡해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곱절로 많아진 관광객 때문일까. 내가 좋아하던 곳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실망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도시는 생각보다 넓고 내가 가본 곳은 고작 몇 개의 길이 전부였다. 내가 보고팠던 그 색이 여전한 곳들은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는 보물 찾기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얼어나 JR을 타고 작은 마을로 향했다.
오야마자키 미술관이 있는 곳이었다. 원래 대부호의 산장이었던 곳을 아사히(맥주 바로 그 회사)에서 미술관으로 개축하였고 안도다다오가 참여했다. 큰 기대 없이 향한 곳이었으나 이상할 정도로 넓고 한산한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좋은 예감이 들었다. 미술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 역에서부터 어느 길로 가면 되는지 잘 안내되어 있었다. 미술관까지는 아주 약간의 등산(?)이 필요하다. 셔틀버스도 있다고 들었지만 조용한 산길이기에 산책 삼아 오르기 아주 좋다. 붐비고 시끄럽던 교토역을 지나온 것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고 푸르름 사이사이로 몇 줄기 빛만이 너울거리는 길이었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만이 가득한 길을 10분 정도 걷다 보면 굉장한 터널을 맞이하게 된다.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 것만 같은, 어쩌면 이곳을 지나고 나면 다시는 저편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은, 그 입구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건너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먼저 느껴보았다. 서서히 통과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달까.
사진이 금지된 곳이라 더욱 조용히 둘러볼 수 있는 미술관의 고요함도, 고택의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도, 정시가 되면 재생해 주는 대형 오르골 기계 소리도, 시야가 뻥 뚫리는 넓은 테라스도 모두 좋았지만 진정한 보물은 별관에 있었다.
'Underground Jewerly Box’
이름마저 보물상자인 이곳은 모네의 수련 시리즈가 전시된 지하 공간이다. 처음 이 건물 앞에 서면 볼 수 있는 것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과 그를 둘러싼 정원의 풍경이다. 계단을 둘러싼 모든 곳이 유리로 되어있어 바깥의 연못이 건물의 일부가 되어준다. 덕분에 한 계단 씩 내려갈수록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묘한 느낌이 든다. 환하게 빛이 들어오던 입구에서부터 점점 빛이 사라지고 연못의 아래라 할 수 있는 완전한 어둠 속에 다다르면 그곳에 바로 모네의 수련이 자리 잡고 있다. 연못의 속마음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어둠 속에서 서서히 빛을 맞이하며 계단을 오를 때에는 설계자의 섬세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유난히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이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고개를 들어 언제고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나부끼는 나뭇잎들을 바라보았다. 버티려 드는 자는 이 시원한 바람을 즐기지도, 결국 버텨내지도 못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이 다 날려버려도 괜찮다는 듯이 마음을 놓아보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도 이렇게 흔들리다 우연히 보물 몇 가지 발견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