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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l 14. 2024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 혼밥 하기

03. 교토에 도착했다


교토로 향하는 길은 익숙했다. 언제나 그랬듯 간사이 공항에서 바로 교토로 가는 하루카를 탔다. 오사카를 달리고 있을 때만 해도 날씨가 좋아 기분 좋게 책을 꺼내 들었다. 창밖 한번 바라보다 책 조금 읽다가, 창밖 한 번 바라보다 - 책에 잠시 집중하고 있을 때쯤 눈이 확 침침해지는 게 느껴졌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창밖에서 무언가 나를 향해 돌진하다 부딪히는 것도 곁눈으로 보였다.


이런.. 비가 오는구나.

교토에 도착할 때쯤 되니 비는 그칠 기미 없이 쏟아졌다.


교토역에 내려 비냄새가 섞인 교토의 향을 잔뜩 들어마셔보았다. 참 오랜만이구나. 재회의 기운을 만끽할 사이 없이 사람들은 이리저리 향하며 나를 흔들었고, 나 또한 들어마신 숨을 바삐 집어삼키며 여행가방을 끌고 가까운 편의점으로 돌진했다. 이곳에 도착해 처음 사는 것은 결국 편의점 우산이구나.

그래. 액땜은 기왕이면 제대로 하는 것이 좋지.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나니 오후 5시쯤 되었다. 첫날이니 가볍게 카모강이라도 보고 저녁이나 먹고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비 오는 카모강을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교토에는 내 기억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북적였다. 관광시장이 다시 활성화되었고 엔저까지 겹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기 모인 듯 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카모강 근처에는 서 있을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다. 내가 즐기고 싶었던 교토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나는 예상치 못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데다가 수많은 사람들에 기가 빨려 더 이상 구경을 다닐 체력이 없었다.


혼돈속 구글맵을 열고 내가 서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별표를 눌러, 메뉴는 상관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시장 입구에 있는 돈가스집이었다. 1층과 지하까지 있는 꽤 큰 규모의 식당이었고, 나는 지하에 있는 자리로 안내받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엔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 많았다. 전철을 탈 때도 잘 안 터지는 구간이 많아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와보니 한국처럼 모두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이제 여기도 인터넷 안 되는 곳은 없구나 했는데,

바로 이곳

돈가스집 지하 1층이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고, 주방도 지상에 있어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교토의 여느 가게들처럼 고즈넉해서 사색에 잠길 수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고, 가게 주인의 취향을 구경할 만한 곳도 아닌 그야말로 최신식 프랜차이즈형 식당이었다.


음식을 시키고 나니 다행히 소일거리가 하나 나왔다. 깨갈이 절구통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이런 깨갈이 절구통을 주는 돈가스집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요즘은 이 절구통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할게 생겼다니 - ! 기쁜 마음으로 깨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이게 되나 싶을 정도로 작고 단단하게만 보이던 작은 알갱이들이 고소한 내음과 경쾌한 소리를 내며 가루가 되어갔다. 윤기가 가득하던 절구통은 빛을 잃어갔다. 처음에는 반짝이는 모래사장 같이 빛나고 소란스럽더니, 이내 사막처럼 변해 빛도 경쾌한 소리도 통 안으로 전부 흡수해버리고 말았다. 깨 가는 소리가 멎은 곳에는 할 일을 잃어버린 내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나는 혼밥을 잘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자연스럽게 뭔가를 보게 된다. 남들의 시선이 민망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으나 집에서 먹을 때도 자꾸 스마트폰을 찾게 되는 걸 보면 그뿐만은 아닌듯 싶다.


실은 오로지 나 자신과만 소통하며 다정히 보내야 하는 그 시간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맛있는지, 기분은 괜찮은지, 고민은 없는지 남들에게는 스스럼없이 잘 나오는 말들인데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영 낯간지럽고 어색했다. 불편한 사람과 밥을 먹을 때 끝없이 말을 해주는 외향적인 사람 한 명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듯, 내 식사에 유튜브 한 편을 초대하고 나면 별생각 없이 그 시간이 잘 흘렀다. 하지만 그렇게 먹는 혼밥은 대부분 때우는 식사가 되기 마련이었다. 영상을 보고 있자면 결국 입에서 느끼는 만족감보다는 눈에 집중하게 되어 ‘먹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해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깨를 가는 행위를 오감 가득 느껴보기도 어렵고.


이날 먹은 돈가스는 분명 엄청나게 맛있는 돈가스는 아니었다. (여행 막바지에 먹은 그것은 예술의 경지였다.) 하지만 첫 끼니에 스마트폰을 압수당하고 나니, 앞으로 내가 혼자 할 식사들에 대해 조금 더 예의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혼밥 친구는 사실 필요치 않다. 나와 음식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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