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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n 30. 2024

큰 것만 기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01. 프롤로그


  “잘 놀다 왔어? 어떻게.. 생각은 많이 했고?”

 그랬다. 나는 생각을 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

  “아니, 뭐.. 생각이야 많이 했지.”

 엄마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원래 생각이라는게 그래. 막 붙잡고 흔들어댄다고 해서 해결되는게 아니야. 그냥 살다 보면 또 자연스럽게 풀리고 그런거야.”

 직접 몸으로 부딪혀 깨지지 않는 이상 누구의 말도 들어먹지 않는 나라는 걸, 엄마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참고 있던 옳은 말을 이제서야 꺼낸듯 했다.  


 그렇다. 이번 여행은 뭔가를 찾아내고 싶어 떠났다. 우습긴 하다. 34년동안 못 찾고 있는 어떤 것을 단 몇일간의 여행으로 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게 말이다. 하지만 아주 조그만 힌트라도, 길이 시작하는 점의 좌표값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 때문에 나는 계속 무너져내리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소설 아니 유튜브속에서도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설렘도, 해보고싶은 일도 찾지 못했다. 떠나온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와 비슷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뭐하러 이렇게 길게 잡았을까? 후회가 됐다. 여기서 더 볼게 있을까? 이제 나가서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 호텔에 누워있고만 싶었다. 그 날은 그렇게 시간을 허공에 버렸다.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누워서 한탄만 내뱉었다. 5시나 되었을까? 이 와중에 몸은 성실하게도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래, 배는 고프니까.. 간단히 뭐라도 사와서 먹고 자자.’


 숙소에서 5분만 걸으면 백화점이 있었다. 편의점과 비슷한 거리니 이왕이면 백화점 지하를 가보기로 했다. 적당히 포장할만한 게 있으면 빨리 사서 나오려고 했지만 아뿔싸 여긴 일본이었다. 정말이지 온갖 도시락을 팔고 있었다. 너무 많은 선택지에 혼란스러워져 잔뜩 찌푸린 눈으로 집중해 진열대를 바라보며 열심히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층을 두 바퀴쯤 돌았을때였을까. 음식들이 눈에 익기 시작하니 비로소 그것을 파는 직원들과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눈이 갔다. 이 도시에서 본 수많은 관광객 대신 저녁 한끼를 해결하러 온, 여기에 삶이 있는 사람이 가득했다. 아크릴로 된 가림막 뒤에서 땀을 흘리며 끊임 없이 야키토리를 구워내는 앳된 얼굴의 남자. “아버지의 날을 기념해서 초콜릿을 사가세요-“ 일분에 한번 꼴로 외치는 아주머니의 또랑또랑한 목소리. 저녁 식사로 연어 구이 도시락과 규동 도시락 중 무엇이 좋을지 심오하게 고민하는 노부부가 있었다.

 문득 이곳은 내 여행지가 아니라 이 사람들의 삶이라는 걸 알았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곳에 할 게 없다는건 볼 게 없다는건 얼마나 시건방진 소리일까. 하나의 삶이 곧 몇백가지 아니 몇 천가지의 이야기인것을.  

 나는 어느새 큰 것들만 기대하는 사람이 돼버렸다. 드라마틱한 사건, 마음을 확 뺏겨버리는 열정, 한 순간 머리를 스치며 얻는 깨달음. 하지만 그런건 원래 없다. 드라마틱한 사건은 일생에 한 번이라도 있다면 감사해야한다 (물론 좋은 드라마여야겠지만). 열정과 깨달음은 한 순간 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매일 가꾸는 텃밭에서 햇빛과 비와 토양이 꾸준히 힘을 줄 때 피어오르는 싹에 가깝다.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닌데 언제부터 외면하고 있었을까? 게을러진 탓에 텃밭을 가꾸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곳에 이미 예쁘게 핀 꽃 한송이 잘 옮겨 심어보려 욕심을 부렸다. 나는 이 날 식품 코너를 걸으며 이 여행에서 내가 진짜 찾아야하는걸 알게 되었다. 다시 작은 것들부터 소중히 하는 법. 실체도 없는 뭔가를 찾으러 집착하기 보다는 하루하루를 밀도있게 살아내야했다.


 할아버지는 오랜 고민 끝에 연어 구이 도시락 2개를 집어 들었다. 나는 그 뒤로도 세바퀴는 더 천천히 그 곳을 세밀히 관찰했다. 그리고도 여전히 진열대에 남아 있던 규동 도시락을 사서 숙소로 향했다. 조용한 호텔방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내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연어 구이 도시락은 맛있었을까. 내건 영 별론데 ..

 ! 이제야 올라오는 이 쓸데없는 생각이 반가웠다. 내일은 아침 일찍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직 이곳에서 내가 경험할 이야기는 많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작은 것들을 소중히 하는 마음은 편히 살다보면 금방 휘발되고 만다. 지금 내 태도도 그 날  도시락 앞의 마음과 자꾸만 달라지려한다는 뜻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그럴듯한 것들에 시선이 가 있다. 고개를 돌려 다시 내 삶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글을 써보기로 했다. 엉망으로 내버려두었던 이 여행기를 정리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큰 의미가 있거나 이루고자하는 바가 있어 적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 시간들을 내 안에 제대로 촘촘히 집어넣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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