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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Aug 11. 2024

이동과 기다림, 그 끝에 마주하는 잠깐의 풍경

07. 바다 마을로 가다


어떤 도시라도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이 있다.

언젠가 ‘이네후나야’라는 바다 마을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잔잔한 바다 위로 정성스레 쌓아 올린 집들의 모습이 스노볼 안에 있는 마을을 보는 듯 해 마음이 편안해졌었다.  그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긴 풍경이 보고파서 나는 이네후나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내가 선택한 길은 분명 지름길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긴 했으나, 앞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고될지 이때는 예상치 못했다.

아침 9시 반, 우선 교토역에서 니시마이즈루역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원래 이 기차를 타고 쭉 아마노하시다테까지 가면 시간이 훨씬 절약되지만 니시마이즈루에서 탈 수 있는 관광열차가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로를 건너는 낭만적인 모습을 본 까닭에, 남는 게 시간뿐인 나는 돌고 도는 길을 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니시마이즈루까지는 한 시간 반정도 걸렸다. 꽤 멋진 협곡들을 지나가서 정신없이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보니 첫 기차 코스는 아쉬울 정도로 금방 끝나버렸다. 역에 내리니 어렵지 않게 관광열차를 타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미리 예약해 둔 표를 실물 티켓으로 바꾼 뒤 시계를 보니 한 시간가량 여유가 있었다. 나는 답답한 역을 나와 점심 먹을 곳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탄고열차라는 레트로한 외관의 관광열차가 출발하는 이 역을 조금 걸어 나오니, 손님맞이 단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장난감 같은 색의 기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파란 기차와 기관사.

그림 같은 풍경의 선로 끝 무렵까지 오니 구글맵에서 꽤 높은 점수를 보유한, 점심식사가 가능한 카페가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문을 열었는데, 길에 한 명도 없던 동네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있었던 모양이다.

내게 남은 시간은 30분, 이 식당은 만석.

그렇다면 식사를 곧 마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아.. 전무해 보인다.

배가 고파왔지만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아쉬움 속 커피만 한잔 들고 다시 돌아온 역에는 팥죽색의 작은 기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대감을 잔뜩 안고 이 귀여운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나는 ‘아, 잘못 탔다!’라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이 작은 한 량의 기차에 가득 찬 사람들 덕에 바깥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굶주린 나를 둘러싸고 모두가 준비해 온 벤또를 먹기 시작했으며, 이 기차에서 내가 살 수 있는 음식이라곤 곰돌이 모양의 작은 쿠키가 다였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커다란 스케치북을 든 승무원이 가운데 서서 큰소리로 뭐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곰돌이 쿠키를 먹느라 바쁜 나를 두고 사람들은 일제히 기차 양 끝으로 뛰어갔다. 승무원이 든 스케치북을 자세히 보니 바다 가운데를 지나가는 기차의 모습이 프린팅 되어 있었다. 아, 이렇게 지나간다고..? 헛웃음이 나왔다. 조바심에 나도 사람들 사이에 머리와 카메라를 들이밀었다가는 곧 자리로 돌아왔다. 배는 고프고 머리는 어지럽고 이 기차 안에 내가 생각했던 낭만은 없는 것 같았다.


‘아, 역시 잘못 탔다. 잘못 탔어.’ 사람들의 사진을 방해할까 이리피하고 저리 피하다 보니 어느새 아마노하시다테에 도착했다. 잘못된 선택과 꼬르륵 거리는 배에 지쳐버린 나는 생각했다.

‘여기서 끝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제 다시 한 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더 이동해야 한다.

시간 갑부가 된 느낌이었다. 시간을 그냥 바닥에다가 막 버리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정류장에서 한 시간을 더 흘러 보낸 뒤 드디어 버스를 탔고, 바닷길을 느릿 느릿 돌아가는 버스를 한 시간가량 더 타 드디어 작은 바다 마을, 이네후나야에 도착했다.


오후 4시 반이었다.

도착해 바라본 마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사진에서 많이 봤던 그 풍경도 좋았지만, 마을 입구에 벤치가 몇 개 놓인 잔디가 있는 풍경이 참 좋았다. 저녁을 먹기 전 이곳에 앉아 바다에 내려와 부서져내리는 해의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7시간 만에 마주하게 된 바다의 반짝이는 빛들은 내가 버렸다고 생각한 시간들을 가져와 아름답게 빚어내고 있었다.


 큰 동네가 아니다 보니 볼 수 있는 풍경은 이 정도가 거의 전부였다. 이걸 보려고 일곱 시간을 달려왔다. 혹자는 이것을 보러 시내에서 세 시간 넘게 시간을 쓰기에는 아깝다고 했다.  


하지만 이동과 기다림. 그 끝에 마주하는 잠깐의 풍경.

어쩌면 이것이 여행의 본질일 수도 있겠다.

꼬르륵. 이제 하루종일 굶주린 배에 뭐라도 넣어주고 하루종일 앉아있느라 뻐근한 허리도 푹신한 이불속에 뉘이면 뭐, 여행에서 얻는 행복이란 것도 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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