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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캐처 Nov 12. 2023

내가 누군가의 말로 기분이 나쁠 때

내 감정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곤 했는데

기분이 나쁜 것이 당연하니 그런 감정을 가진 나를 나무라거나 괜히 멈춰 돌아보거나 그러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중이다.


사실 내가 정말 그 말대로 잘못을 했을 수도 있지만, 갑자기 지나가는 길에 쏜살같이 날아오는 공에 맞아서 아플 수도 있는 거다. 


오래 전 하교길 운동장 근처를 그냥 걷고 있다가 날아온 공에 맞아 꽤 쎄게 아파본 적이 있다. 딱히 공에 맞을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나는 많이 아팠지만, 저 멀리서 공을 찬 그 누군가는 나를 맞춰서 아프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니어서 내 근처에서 뛰던 누군가 공을 가지러 왔을 뿐 공을 맞아서 아픈 나에게는 그 어떤 사과도 어떤 말도 없었다. 고통도 아무렇지 않아지겠지 하고 원래 가던 길을 다시 쭉 이어갔다. 그 뒤에 다른 장소에서도 갑자기 튀어나온 공이나 엉뚱한 심보를 가진 사람에게 아프게 맞은 경험이 있다. 그 곳을 하필 그 때에 내가 지나가고 있었거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 외에 딱히 내가 고칠 이나 별 다른 잘못은 없었다.


만약, 그런 상황에 대해 예방을 한다면 언제 어디서 무서운 공이 나에게 날아들지 모르니,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잘 살피면서 위험할 때 얼른 뛰어서 빨리 그 지점을 피할 대비를 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대체로 아무 때나 화를 버럭 내곤 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풀 마땅한 상대만 눈 앞에 나타나면 상대가 누구라도 잔뜩 오물같은 감정 찌꺼기를 쏟아내곤 한다.


상대방이 누군가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사람이 걸리기만 하면 이 때다 하고 트집을 잡고 과하게 분노를 쏟는데, 평소에 딱히 발산할 계기를 못 찾아 웅크리고 누적한 분노를 한껏 쌓아올려뒀을 수도 있고 하니, 내가 그 정도로 큰 문제인 것도 아니다.


감정을 함부로 쏟아내서 오래 어렵사쌓아올린 본인의 평판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갉아먹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한 채 그렇게 나이가 들고 그러다보니 주변에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이 보여서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괜히 화를 잘 내는 사람을 유난히 싫어하게 된 역사는 꽤 길어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안 만날 수 있으면 등 돌리고, 관계를 못 끊어내면 피하는 것이 내 안전과 평화를 위해 상책이라는 결론을 안고 산다.


가끔이든 자주 만나든 화를 스스로 잘 해소하지 못하는 사람과 여서 보게될 때의 문제가 있는데, 그 건 바로 정말 쓸데없이 미움을 곱씹고 키우면서 한정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좋아하고 계속 보며 지낼 사람들, 아끼고 만나면 기분 좋아지고 서로에게 좋은 것만 주고 받을 사람들을 떠올릴 시간을 모조리 빼앗긴다.


애증이나 증오, 분노가 나에게 좋지 않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만나면 안 좋은 사람은 친구가 아니고,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X나 Y Z라는 존재로 치환하는 것, 그리고 더 이상 내 소중한 시간을 그럴 가치가 없는 존재를 떠올리는데 낭비하지 않는 것을 수련하는 중인데, 워낙 고난이도인지라 당연히 한 번에 잘 될리 없다며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방향을 '죽도록 영원히 절대 잊지 않고 미워하기' 쪽으로 정하고 반복하고 집중하면 당연히 미움이 커지게 된다.


나를 위해 남을 미워하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은 바로 좋은 방향으로 에너지를 집중해야 나답게 생기있게 살 수 있다는 의미다.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만 소중한 이름을 붙이고 계속 서로 그리워하고, 다정한 말을 주고 받으며 만나면 기뻐하고, 긍정적으로 길들이는 좋은 친구를 만나는 마음 상태로 사는 것은 나와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분명하다.


나를 괜히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면 '스트레스가 참 큰가보다' 한다. 그리고 그 기간에는 안 마주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까지는 조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괜히 내 감정을 화를 내는 자신이 서 있는 밑바닥까지 같이 끌어내리게 가만 두지 않는다. 안 바뀌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에 그 들은 반성없이 그대로 쭉 살다 죽을 것이다. 확실한 선을 긋고 안전거리 유지를 위해 그 들에게는 절대로 가까이 가지 않는다. 말을 꼭 해야한다면 최소한으로, 그 이상의 교류는 없다.


미움받을 용기는 인정하지만 그런 용기있는 모습에는 굳이 웃으면서 대처할 필요도, 지속적인 미움으로 아까운  시간과 관심을 들여 주목할 가치도 없다. 웃으면서 대처하다가 실실 웃고 비웃는다고 꼬투리 잡혀서 고생하는 것도 괴롭게 목격했다.



혹시 그런 사람에게 숨도 못 쉬고 휘둘릴 처지에 있다면, 빨리 그 악연으로 이어진 관계의 감옥에서 탈출하길 권한다. 계속 참아질 일도 아니고,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면 어떤 병에라도 안 걸릴 방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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