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토리캐처 Mar 18. 2024

살면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잔소리'라는 거대한 파도

잔소리 알러지가 있는 편

나도 걱정이 없는 편은 아닌데, 아무래도 풍파를 굽이 굽이 건너 70이라는 숫자를 지나고 계신 내 시엄마는 프로 걱정러일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굴곡 깊은 '한'도 마음에 깊이 뿌리 깊이 새겨져 있다.


가슴'답답함'도 늘 겪으신다고 하고 걱정의 파도에 자주 잠기시는 편이라 굳이 이 시점에 거기까지 생각하신다고? 싶을 정도로 '최악'으로 빠르게 닿는 무서운 상상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시는 편이다.


암은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도 전이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내 가족에게 벌어진다면 태연하게 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 된다. 치료가 즉시 진행될 예정이지만, 가족에게는 양날의 검인 것이 암세포를 겨냥한 방사선 치료의 결과가 꼭 개운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방사선 치료를 꾸준히 받는다는 분에게 어떤 다른 능력의 퇴화(폐 기능 저하)왔다 말을 들었다며 앞으로 '시아버지'에게 닥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에 마음의 대비할 수 있도록 알려 주셨다. 


지난 번 입원하실 때 비슷한 질병 증상의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을 만나 가끔 안부를 묻곤 하시는데, 그저 전화 한 통만으로도 의지가 되시는 것 같고, 아무리 보호자 자리에 있어도 몸고생은 기본이고 불안 가득한 마음으로 한 집안을 장군처럼 이끌어오신 시엄마도 전혀 아프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도저히 없어서 한 번에 다 세기 힘든 많은 알약들을 드시고 계셨다.


이런 상황들과는 별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행동을 촉구하는 이야기를 반복하시는 건 약간은 부담된다.


잔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고 그저 지겹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따르고 실행하는 건 내 자유거늘, 어른이가 말을 하면 따르는 것 외에는 선택권은 없는 것 같은 이야기를 매우 꺼리는 편인데, 놓아버리지 못한 각자의 욕망과 의지로 매번 마주 할 때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서 괴로울 따름이다.


애써 다르게 포장하고 싶지만 잔소리 말고 적당한 말을 찾기 힘들다. '분명 아까 하신 말씀인데 왜 인지 재공연 대사인가 아주 처음 말씀하듯이 억양과 속도마저 동일하게 차분하게 또 시작하시는가'싶은 거대한 파도 같은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거나 순순히 긍정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하지는 않는 편이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건 나와 맞지 않다. 싫어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진짜 싫은 건 나만 싫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소리도 듣기 싫고 꼴보기 싫을 순 있겠지만 그 것도 역시 상대방이 감당할 몫이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시대를 살며 내가 정의해 보는 어떤 '착함'은 이해할 수 없는 남의 의견에 바로 '내 마음은 접고 뇌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나서' 급한 불을 끄자는 심정으로 일단 따르고 찜찜한 기분이 들더라도 납작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견과 언제든지 다를 수 있는 자유로운 내 의견을 나 스스로 존중하고 인정하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폭탄같은 갈등이 생기고, 불편함이 있더라도 이 또한 거쳐야하는 과정이고 지나고 나면 또 다른 파도로 잊혀질 일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잘못한 건가 싶은 후회하는 마음을 다독일 일이다.


착하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조용히 시키는대로 해내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반박없이 스펀지처럼 그대로 흡수하는 것은 '사람이 착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조종해도 좋은 상태로  '스스로 죽은 것'이다.


나는 그런 조종당하기 좋은 좀비 상태로 단 한 순간도 살 생각이 없다. 이렇게 살았을 때 기대되는 좋은 점 한 가지는 '한국인의 정서'라고 오해 받는 '한'을 간직하고 늙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억압이고,할 말 못한 억울함이자 꼭 피해야할 고난이지 당연한듯 감내해야 할 고유의 정서가 아니다.



고작 나이로 말할 자격을 켜고 끄고 누르는 나라에서 사는 주제에 어디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짧디 짧은 가느다란 실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자 '나는 때로는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수결의 법칙에 의해 결코 평범해질 수 없는 특이하면서도 아둔한 자'의 짧은 생각이다.


하지만 잔소리하고 싶은 자유도 존중한다


내가 듣기 싫지만 그래도 시엄마는 계속 쌩쌩하게 하시던대로 걱정도 잔소리도 내내 해 주시면 좋겠다. 살아가는 방법과 스타일의 차이니까 가끔 그런 걱정하는 마음 속에 사랑이 크게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이 있다. 하지만 잔소리가 시작되면 그 느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멈춤 버튼을 찾고 싶은 심정이 된다. 


사랑을 표현하는 우아한 다른 방법을 배우기에는 조급하고 성급해져버리는 마음일 때가 있으니, 걱정이 아주 크면 모든 순간이 위급하게 보이고 당장 긴급출동해서 불을 끄고 싶은 그런 상태일테니까 시엄마의 급한 성격도 기여하는 바가 있을 거다.


시아버지 암세포는 이제 그만 전이되어야 하는데, 달리 어쩔 수 없다지만, 막연한 걱정 대신 한 순간이라도 한 번이라도 더 크게 소리내서 웃으시고 마음 편하게 지내시길 바래본다. 그래도 전에 치료받으시고 나서 비록 몇 개월이지만 평화롭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요즘같은 시국에 서둘러 빨리 치료해 주시려는 의료진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나에게 말할 상대의 자유 vs 편하게 듣고싶은 말만 들을 나의 자유
오늘 아침에 인스타그램에서 본 스퀴지아트 - 색상 어우러짐이 가히 예술
작가의 이전글 우연히 발견한 세련된 이야기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