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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Oct 13. 2019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도록

캐리어 끌고 들으러 간 수업에서 배운 메뉴



좋아하다

요리를 좋아한다. 글을 쓰며 돈을 벌 수 있게 된 이유는 줄곧 책 곁을 맴돌다 보니 어쩌다 그리 된 것인데, 책 곁을 맴돈 가장 큰 이유는 순전히 요리책 때문이었다. 책장마다 다소곳이 앉아있는 아름다운 빛깔과 자태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한 장 한 장이 미술관에 걸린 작품처럼 아름다웠다. 게다가 이 아름다움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천재의 것이 아니라, 비슷하게나마 흉내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몹시 안심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3년간 몸담았던 출판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책을 펴낸 출판사였다.


나의 요리책 사랑은 한글을 막 깨친 다섯 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누렇게 빛바랜 비닐 커버에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주부요리백과>-정작 주인인 엄마는 잘 보지도 않는-나, 엄마 따라 간 미용실 한편에 비치되어 있던 여성 잡지의 요리 코너를 탐독했다. 지금 나오는 책들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한 사진 크기와 화질이었지만, 조리 과정 사진과 순서를 눈으로 따라가며 요리의 맛을 가늠할 수 있어 마음이 흐뭇했다.

'음, 돈가스 옷은 밀가루-계란-빵가루 순으로 입히는 거구나!'

'이렇게 하면 정말로 이런 요리가 나오는 건가?'

요리책을 뒤적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책 속의 요리를 실제로 만들어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먼발치에서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완성된 요리의 맛도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책에 나오는 순서대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과정을 직접 온몸으로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요리책만 믿고 따르면, 나도 사진 속의 아름다운 요리를 정말로 만들 수 있는지 궁금했다.


어린이 혼자 불을 마음대로 쓰게 내버려 둘 리 없으니, 엄마가 외출을 하는 날만 기다렸다.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나감과 동시에 다락문을 열어젖혔다. 프라이팬과 버너를 챙겨 다락에 기어 올라가, 책을 펼쳐놓고 이런저런 것들을 따라 했다(위험합니다, 여러분!) 주방으로 달려가 계란 하나라도 프라이팬에 깨뜨려야 직성이 풀렸다. 뜨거운 무쇠 팬을 그대로 잡았다가 손에 커다란 물집이 생겼던 날의 감각은 아직도 또렷하다. 뜨겁고 쓰리고, 물집의 원인을 들킬까 봐 가슴은 온통 두근거렸다.



다시 좋아하다

'사회초년생'의 사전적 정의를 온몸으로 맛보던 인턴 때였다. 회사에 적응하느라 몸과 영혼이 탈진상태였다. 에어컨이 풀가동되는 사무실에 앉아있어도 등엔 늘 식은땀이 흘러, 블라우스가 항상 축축했다. 언제, 또 무슨 실수를 할지 몰라 마우스를 잡은 손은 항상 덜덜 떨렸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어김없이 실수가 생겼고, 상사에게 호되게 혼났다. 회식자리에선 상사가 곁에 앉아 내 허벅지며 팔뚝을 슬쩍슬쩍 만졌다. 억울했고 슬펐고 분노했지만, 어렵게 들어간 회사였다. 어느 늦은 밤,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데 문득 요리책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틈만 나면 서점의 요리코너에 들렀다. 어릴 때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올 컬러에 책장 가득 요리 사진이 시원시원하게 실려있어 볼 맛이 났다. 특히, 아름다운 베이킹 책이 차고 넘쳤다. 몇 권을 조금씩 구입하다가 결국엔 오븐을 샀다. 그때부터 주야장천 뭔가를 굽기 시작했다. 쩨쩨하게 계란 프라이를 부치고 가끔 남자 친구 도시락 싸주겠다고 크로켓을 튀기는 것 말고, 대범하게 밀가루와 설탕, 계란을 슥슥 섞었다. 끓는점을 훨씬 넘어 180도, 때론 230도까지 치닫는 온도도 맘에 들었다. 숱한 실험에는 당연히 숱한 실패가 잇따랐지만, 야근 후 집으로 돌아와 녹초가 된 상태에서도 새벽이 이슥하도록 베이킹 책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피곤해도 요리책만 보면 힘이 났다.


본격적인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서, 나를 말릴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공간과 금전 개념 없는 사회 초년생의 구매력이 한데 모여 시너지를 냈다. 오븐의 뒤를 이을 뭔가를 계속 사들였다. 믹서기, 건조기, 와플기, 각종 양념과 온갖 허브... 1인 가구인 데다 대부분의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면서도 써보지 않고는 못 견뎌 구입했다. 퇴근 후엔 늘 주방에 있었다(주방이라고 말하기에도 뭣하지만). 밀가루와 계란을 반죽해 머핀을 굽고, 고기를 양념에 재워 육포를 말리고, 과일 청을 담그고, 잼을 만들었다. 만두를 빚고, 국을 끓이고, 가지를 굽고, 고구마를 삶고, 야채를 볶고, 떡을 튀겼다. 정신을 차려보면 작은 싱크대가 흘러넘치도록 닦아야 할 접시가 산더미였지만, 요리하는 걸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나 회사 다니는걸 힘들어했으면서, 어떻게 집으로 돌아와 새벽까지 요리를 할 수 있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무렵의 나에겐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처음 맛본 사회는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세계였다. 나 혼자 맞서야 했고, 스스로 나를 변호해야 했고,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그때의 나는, 마우스를 잡은 채 손을 떠는 무력한 일개 인턴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리의 세계는 달랐다. 호기롭게 요리책을 쫙 펼치고, 쓰여있는 대로 차근차근 순서를 따라 하기만 하면, 나도 멋진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거 봐, 나도 이렇게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세상을 향해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요리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했고, 비로소 제대로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점점 늘어났다. 크리스마스에는 초콜릿 케이크를 구웠고, 한여름에도 좁은 원룸에 180도의 오븐을 켜놓고 땀을 뚝뚝 흘릴 열정도 있었다. 가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밥과 국을 끓여주면 두 그릇씩 뚝딱 비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흐뭇했다.



더 좋아하다

'밥은 남기면 안 되고, 김치로 밥그릇까지 닦아먹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그리고 썩 유쾌하진 않은 정보만 가지고 참여한 템플스테이에서 처음 사찰요리를 만났다. 늘 2D로만 보던 요리책 속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3D로 구현되다니. 너무 아름다워서 젓가락도 못 대고 요리가 담긴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핸드폰은 물론, 필기구도 지참할 수 없어 재료, 색감, 배치...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애썼다(웬일인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 무렵의 나는 그 좋아하던 요리와 꽤 오랜 시간 결별 중이었다. 일이 바빠 집에 돌아오면 늘 쓰러지듯 잠들었다. 돈을 쓰는 걸로 지친 몸과 마음을 보상하던 때였다. 자꾸 뭔가를 사들였고, 유명하다는 맛집 탐방에 열을 올렸다. 집에 돌아오면 냉장고를 열어 배가 터질 때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먹거나, 과자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인터넷으로 오예스를 하도 많이 시켜서, 길을 걷는데 택배기사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오예스 많이 시키는 분 아니세요?"하고 알은체를 할 정도였으니(하루에 40개씩 먹었습니다).


내가 나를 완전히 놓치고 있었을 때, 템플스테이에서 만난 아름다운 한 접시 덕분에 다시 주방에 섰다. 사찰요리 덕분에 접시 위의 계절을 읽게 되었고, 제철 식재료로 내 몸을 보살피는 법을 배웠다. 다른 존재의 처지를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채식을 시작했고, 인생의 대부분 무리 속의 고요한 1인을 자처해왔던 내가 처음으로 "나는 채식을 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냈다.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타인의 반응에 대처하면서 나를 변호하고 보호하는 법을 배웠고, 이 과정을 통해 내가 결코 무력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맞서기만 하던' 세상과 다정하게 만나는 방법도 배우고 있다. 지금도 사찰요리에 기대 이렇게 글을 쓰고, 내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분들과 소통하고 있으니까.


지난 며칠, 친구들과 괌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새벽 비행기에서 아기 중창단의 울음소리 때문에 단 한숨도 못 자고 뜬눈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당장 집으로 가서 누워도 시원찮을 판에, 어지러워 토할 것 같은 몸으로 캐리어를 끌고 사찰요리 수업을 들으러 갔다. 수업에 가면서도, 요리를 하면서도 '제정신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리를 하면서 좋았다. 그다음 날인 어제는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대전의 한 절에서 열리는 사찰음식 축제에 다녀왔고, 오늘도 아침부터 사찰요리 수업을 듣고 왔다. 현관에는 아직 채 풀지 못한 캐리어가 우두커니 서있다.


괌에 함께 갔던 친구가 오늘자 인스타그램에 관악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산 정상에서 웃는 행복한 표정을 보니, 여행은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으로 생긴 일상의 빈칸을, 무심결에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게 되는구나 하고. 인천공항에서 두 시간 동안 캐리어를 끌고 수업을 들으러 가면서, 비몽사몽 간에 수업을 들으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 네시에 눈을 번쩍 뜨고 서울역으로 향하던 그때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사찰요리를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를.


그동안 내가 해온 요리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였다. 불안하지 않기 위해 요리했다. 세상으로 향해있던 모든 감각을 다 닫고, 눈 앞의 요리책에 코를 박았다. 그런 내게 사찰요리는 요리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내가 속한 세상을 확장하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을 가만히 일러주었다. 사찰요리 덕분에 눈 앞의 하루를, 다가오고 사라지는 계절을, 내 곁의 사람들을, 내게 주어진 삶을 좀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면 과장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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