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K Feb 11. 2016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숙제

인간관계의 그 오묘하고도 복잡 미묘한 세상에 대하여

 지난주 금요일 아내와 함께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편집장님을 만났다. 그분과의 인연은 아내의 지인으로 여행을 떠나기 4~5년 전에 시작하여 지금껏 이어 오는 인연이다. 오래된 인연이긴 하나 그간 만난 횟수를 따지면 일 년에 한번  정도였으니 오래된 인연이라고 말하기도 무언가 어색한 사이이다. 정확히 분류한다면 아직까지는  아내의 지인 편에 있는 인연이다. 편집장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조언을 해주신다. 


‘여러 사람을 만나봐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그게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지난번 여행 강연 후 가진 술자리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집순이인 아내와 비슷한 성향인 것을  간파하시고 하시는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사람을 만나 인맥을 만들어 놓아야 무엇을 하든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진심 어린 조언은 감사히 새기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조용히 경청을 하였다. 


 편집장님과 헤어지고 친구의 개업식에 잠시 들렀다.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섞여있는 공간에 던져지면 자연스럽게 아는 사람들의 울타리로 들어가 숨어 버리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그날은 편집장님의 이야기가 생각나 어색하지만 힘껏 입가에 미소를 지어 처음 보는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한다. 


외향적인 나로 변신하는 시간이다.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농담하고, 그러다 “제가 너무 내성적이고 사람 낯을 가려서”라는 진심을 툭 하니 던졌을 뿐인데, 사람들의 박장대소가 이어진다.


 인맥관리. 


 제일 못하는 것 중 하나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고, 이해타산적인 계산이 사람 사이에 들어오는 순간 그 인간관계의 유통기한은 이미 끝난 것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 어떤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군가가 옆에서 심어주지도 않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속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난 가치관은 좁고 깊은 인관관계가 필수사항이 되는 삶을 형성하였고,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 마음을 문을  열기 보다는 천천히 두고 보고 마음을 여는 편협하고도 옹졸한 마음을 가진 대인관계의 소유자가 되어 버렸다.

 가끔 지인들은 걱정 어린 마음으로 마음을 건넨다. 알고는 있지만, 고칠 수 없는 난치병 일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스스로는 문제점이라 생각하지 않지만)은 이러한 성격이 싫지 않다는 것.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좋아한다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어릴 적 너무 외향적인 성격 탓에 항상 골목대장을 했어야 했고, 처음 보는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 무지막지한 친화력을 소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의 무게가 늘어감에 따라 생각과 입도 자연스럽게 무거워졌다.


그렇게 30대 후반이 되었을 땐, 친화력 대신 후덕한 뱃살을 얻었다.



  40년 가까운 삶을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에 지각변동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취업, 결혼, 자녀, 장례식…

 삶의 변화가 생기는 이벤트가 발현되는 순간 의지와는 상관없는 인간관계의 가지치기가 시작된다.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혹은, 잘려 버리는 이 가기치기는 싫고 좋음의 간단한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라 라플라스 함수 수준의 단단히 꼬여버릴 대로 꼬여버린 우리의 삶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나의 삶의 변화 중에서는,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여행’ 역시 관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장기여행을 떠나와 1년이 좀 지났을 무렵 한국에 봄이 오니 많은 지인들의 연락이 왔다. 안부와 여행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결혼 소식으로 이어졌다. 무소식이 일순간에 청첩장으로 돌변하여 장기 여행자에게 축의금 송금을 에둘러 종용하는 모습을 마주하자니, 관계에 대한 생각이 네온사인처럼  순간순간 뇌 속에서 깜빡인다. 어떤 지인은 자발적으로 송금을 해주고 싶어도 여행자의 형편에 마음의 축하만으로도 고맙다며 끝까지 사양하고, 어떤 지인은 다이렉트로 계좌번호를 보내온다. 

 어떻게 이 두타입의 지인과 똑같은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로써 스스로가 성인군자가 아님을 확실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송금을 후 

"5만원 짜리 인간"

에 대한 생각이 나를 괴롭혔었다. 인간관계의 가치가 '5만원 축의금'으로 그 프레임이 구축되어 버린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자연스럽게 ‘5만 원의 관계’는 비워졌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상처가 난 후 새살이 돋아 나는 것처럼 의도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인간관계로 그 비워진 만큼 혹은 더 이상이 채워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좀 더 나다운 나의 가치관에 가까운 사람들로 말이다.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힘겹게  부여잡던 껍데기만 남은 관계를 놓아 버리니, 새로운 인연이 알맹이를 들고 찾아와 그 자리를 메우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인연을 보내니 새로운 인연이 채워진다' 라니, 뭔가 아이러니 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 않고 맞지 않는다고 쉽게 외면해버리는 행동을 통해 사람과의 인연을 가벼이 여기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자신에게 인연으로써 다가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을 하고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관계의 기본이기에, 그 인연에게 진정성을 담아 마음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관계를 구축해 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최선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에 틈이 생겨 일그러져 버린다면 그때는 곰곰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관계의 의미와 가치를 말이다. 

 10대는 사람에 10가지가 보였고, 20대에는 20가지가 보였다. 그리고, 40대를  앞에 둔 지금은 40가지에 가까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을 판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보여주는 것들에 조금 더 귀를 기울기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다른 것이 아닌 사람에 대해서 집중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생각과 가치관이 변하고 깊이가 달라지는 과정에서 오는 결과의 산물이 아닐까 싶고 그러하기에 인연에 대한 가변성 역시 지우지 못하고 남겨 놓아야 하는 영역이 아니겠는가.


사람과의 관계. 

이 오묘하고도 복잡 미묘한 관계에 대한 물음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임에 분명한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이전 10화 우발적 슬픔에 대한 대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