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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Jan 03. 2016

불면증

흔들린 멘탈의 자괴감을 오롯이 받아 들이는 시간

 피로가 밀려와 눈의 실핏줄  하나하나 뻘겋게 일어나고 정신은 가수면 상태의 멍함을 지녔음에도 잠을 못 이루는 밤이 있다. 눈을 감고 몇 시간째 잠을 청해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머리 속에는 결정이 맺혀가고 그럴수록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강강술래를 펼친다. 


 소위 말하는 ‘불면증’이다. 직장인의 굴레에 들어감과 동시에 늘 시달렸던 만성피로로 인해, “나 예민한 사람이야.”라는 팩트는 픽션으로  변질된 지 오래였다. 그렇게 잊고 살던 ‘불면증’이 요 근래 다시  찾아온 것이다. 물론, 혹자는 ‘몸이 편해서’라고 쉽게 말하며 ‘배부른 소리’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은 그것이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 내려지기에는 뭔가 모를 복잡 미묘한 고리로 얽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다니던 2년 반의 시간 동안 정말 잘 잤다. 여행을 하며 돌아다녀서 피곤해서겠지라는 섣부른 판단은 미안하지만 지양하겠다. 장기간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에 지쳐 한 마을에 1~2달간 장기로 머무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우리의 경우에는 이집트 다합에서 한 달 반, 멕시코 산크리스토발에서 한 달,  과테말라에서 두 달, 그리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에서 삼주를 보냈었다. 

 잠시 장기로 마을에 머무를 때 생활을 설명하면, 늦은 아침에 일어나 어슬렁 거리며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빵이나 시리얼, 커피 등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는 아내와 함께 아무런 목적도 없이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한다. 거의 매일 같은 코스로 아침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해 먹는다. 최선을 다하지만 항상 최선이 아닌 결과물의 점심을 먹고 주섬 주섬  이것저것을 챙겨 동네로 나간다. 그리고는 단골 동네 카페( 카페가 없는 나라와 동네도 많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가 장기간 머무른 마을엔 꼭 카페가 있었다.)로 간다. 익숙한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하고 항상 앉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그리곤 그날 하고 싶은 걸 한다. 뉴스를 검색해 한국의 정세를 파악한다거나 ( 이상하게 외국에 나가 있으면 나라 걱정이 더 많이 생긴다. 모두들 이야기하는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가지고 다니던 책을 읽는다거나, 아니면 끄적끄적 낙서를 한다거나 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게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벌써 해가  뉘엿뉘엿한 시간이 된다. 

정말 하는 일 없이 시간이 잘 흘러 간다. 

 그럼 다시 주섬 주섬 짐을 챙겨 동네 시장이나 마트로 향한다. “오늘 저녁은 무엇으로 할까?”라는 주제로 아내와 함께 토론을 하며 장보기의 임무를 완수하고 숙소로 돌아간다. 돌아와서는 저녁을 먹고 함께 다운받은 영화 혹은 드라마, 오락프로그램들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정말,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2시쯤에 잠들어 10시에 기상하는 규칙적 생활을 일말의 의심도 가져보지 않고 보냈다.


 예전 여행에서 장기 체류시 보냈던 시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은 일들( 가정주부의 가사들과 다른 일과들 )을 하며 그리 넉넉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가끔씩 잊고 있을 때 비웃듯이 불쑥 찾아오는 ‘불면증’에 정말 난감함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이유는 누가 봐도 극명하게 알 수 있다. 

불안감에서 오는 불면증이다. 

 모든 사람에게 감정의 사이클은 존재한다. 인간은 모두가 조금의 조울증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고, 부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평소에는 감정의 기복의 끈을 잘 잡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아차 하는 사이에 끈이 녹아  흘러 내려버리는 날이 생긴다. 이미 흘러 녹아내려 버리기 시작하면 다시 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녹아버리게 놔두는 수 밖엔.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 녹아내린 감정이 자고 일어나면 다시 원상태로 굳어져 있다는 게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처음에는 ‘불면증’과 그‘불면증’의 유발 요소인 멘탈의 흔들림에 너무  당혹스럽고 누군가가  알아차릴까 부끄러웠다. 나름 강철 멘탈이라 스스로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삼십 대 후반에 호기롭게 스스로 백수의 길을 선택하고선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감정을 녹여 버리는 꼴이라니 부끄러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이 흔들림의 시간도 다 의미 있는 시간이라 스스로 믿기로 했다. 여행 말미와 여행에서 갓 돌아왔을 때 느꼈던 결핍의 결여가 주는 무기력을 겪어보았기에 지금의 결핍과 고민이 나에게 독이 아닌 쓰디쓴 약으로 작용하리라 또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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