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네스 Jan 15. 2016

TV 없는 거실 이야기

집에 TV가 없다면 어떻게 지낼까

TV없는 우리 집 거실(2020년 3월)

   첫째 아이 20개월 즈음 거실에 떡하니 붙어있던 TV를 떼내어 다른 곳으로 보내고, 서재에 두었던 책장을 거실로 옮겼습니다. 아이 책과 어른 책 할 것 없이 책장에 복잡하게 꽂아 놓으니 거실이 좀처럼 깔끔하지 못하고 지저분한 것은 사실이에요. 남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리벽이 정신병자 수준이었던 저는 깔끔하게 정돈되지 못한 이 어지러운 환경이 몹시 괴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남과 동시에 '정리'라는 것을 완벽히 잊게 되었어요. 연년생의 어린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정리를 하고 싶어도 그것은 불가능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온 지인들은 TV 없는 거실을 보고 깜짝 놀라요. TV 없이 썰렁해서 어떻게 사냐며 TV를 없애도록 허락해 준 남편이 참 대단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작 TV가 없어지면 가장 아쉬운 사람이 남편일 텐데(그 이유는 모든 남자들이 잘 알고 있겠죠ㅎㅎㅎ), TV를 내다 버리 자는 아내의 말에 군소리 없이 찬성해 줘서 참 고맙고  감사해요. TV가 사라지자 남편은 또 다른 애인인 스마트폰과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고, 아이들은 TV가 뭔지도 모르고 자라고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TV가 없는 이 공간, 이 환경에 가장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바로 저...!!!



  일단 집이 조용해져서 너무 좋습니다. 옛날엔 TV를 보던 말던 그것을 켜 놓고 불필요한 소음과 자극에 뇌를 혹사당했는데 이젠 그럴 일이 없어졌어요. 특히 식사시간에 눈은 TV에 고정한 채 숟가락으로 음식을 입에 퍼 넣는 이상한 행동들이 사라졌답니다. 온 가족이 즐거운 식사시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TV가 있는 집에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한 가정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던 TV가 사라지니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살 방법을 궁리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대화를 하거나.



  제가 TV를 없앤 궁극적인 목적은 '조용한 환경' 이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책 위주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TV가 사라지고부터 드라마 한 편 보지 않고, 어떤 예능이 유행하며, 어떤 연예인이 대세인지는 잘 모르지만 책이 알려주는 지혜와 사회, 경제,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면으로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보면 참 재미없게 산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게는 이런 생활이 즐겁고 재미있어요.(가끔 미치도록 TV가 보고 싶을 때는 먼 거리에 있는 친정이나 시댁으로 도망가기도 해요.ㅎㅎㅎ)



  또 아이들에게 단 한 번도 책 읽기를 강요하거나 억지로 책을 읽어주기 위해 애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책을 가까이 두고 읽는 습관이 저절로 형성된 것 같아요. 현재 제 아이들에겐 책을 '읽는다' 보다는 책을 '본다'가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아직은 스스로 읽지 못하기 때문에 무조건 엄마에게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떼쓰기도 합니다. 같은 책이라도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읽어주다 보면 결국 아이들은 그 내용을 외우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엄마가 읽어주지 않아도 혼자서 책을 보며 아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물론 TV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이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한 것이 아니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엄마 스스로 책 육아를 의도한 바는 아니었어요. 저는 그저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부모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하게 자라는 것이 최고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책이든 흙이든 장난감이든 놀이터든 간에 아이들 스스로 즐거우면 그만입니다. 어릴 때부터 티브이라는 바보상자에 길들여져 단순한 재미만 찾는 것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삶의 즐거움을 찾았으면 합니다. 즉,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좋아하는 것이 책이 된다면 부모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TV 없는 거실이 언제까지 저희 집에 존재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확신으로는 아이들이 출가할 때까지 유지할 생각입니다. 혹시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TV만 보는 남편이 보기 싫거나(ㅎㅎ), 아이들의 TV 중독 때문이 걱정이 많으신 분들, 시끄러운 환경에 상당한 피로를 느끼신 분들은 과감히 TV를 없애 보세요. TV가 꼭 필요한 불우이웃에게 나눔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고가의 TV 한 대를 집에서 내보냄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이익 또는 경험하게 될 효과는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입니다. 'TV 없는 집 만들기' 실천으로 한 번 옮겨 보시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