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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네스 Aug 15. 2019

여자가 밥 차리면 설거지는 누가 해?

네버엔딩 집안일

푸짐하게 한 상 가득 점심을 차려놓고 남편을 깨웠다. 한 번에 잘 일어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여러 번 부르고 또 부른다. 아이들이 달려가 아빠 흔들어 깨워도 미동 없다. 한솥 끓인 순두부찌개가 다 식기 전 내가 직접 가서 깨운다. 남편은 그제야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카레 ."

"응.. 데워게"


를 내오니까

"그냥 오늘은 순두부찌개로 을란다. 도로 넣어라"

"아까 분명 상차림 봤으면서 왜 카레 달라 그랬어?"

"아깐 제대로 못 봤다."


남편은 경상도 남자로 말투에서 무뚝뚝함이 뚝뚝 묻어나온다. 댓가지 반찬과 보글보글 끓인 순두부찌개를 보고도 카레를 달라남편이  미웠다.


식사를 끝내자마자 남편은 제 그릇을 싱크대에 집어넣고 다시 안방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본다.

해오던 것처럼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정돈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리도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지? 남편이 식탁 위에 추루룩 흘려놓은 시뻘건 순두부찌개 국물이 나의 화를 더 돋웠다. 심장이 막 요동쳤다.


남편과 나는 같은 직종이라 같은 강도을 하고 출퇴근 시간도 같다. 하지만 퇴근 후 사 준비는 나의 몫 나의 책임이 되는 걸까.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은 하루 세끼 혹은 그 이상의 밥상을 차리고 치우 그릇을 닦았다. 난 엄마가 그러는 게 당연한 일인 듯 보고 자랐고 여자들은 모두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니 심사가 꼬여 미칠 것만 같다. 이상하게 결혼 후부터 설거지를 할 때마다 계속 화가 났다. 불쑥불쑥 올라오 화는 처럼 사라질 기미가 없다.


집밥을 하는 데에는 엄청난 수고를 필요로 한다. 반찬을 만들고 찌개나 국을 끓이고 그릇에 반찬을 내어 담고 수저를 놓는다. 그래도 내 새끼 입으로 맛있는 음식 넣는 일이니 집밥이 힘들고 번거로워도 겨우겨우 해내는데.. 가족들이  먹고 자리를 떠난 후, 처참한 식탁과 그릇들이 오롯이 나의 몫이 되는 것은 견디기가 힘들다. 설거지할 때 부딪치는 그릇 소리가 나의 마음을 표현해 준다.


오늘 점심 식사 후,

남편이 고마워 한마디만 했더라면..

식탁이라도 닦아 주었더라면..

마지못해 애들 식사 지도라도 해주었더라면..

집밥 차리는데 수고로움을 알아만 줬더라면..

나는 이렇게 분노하지 않았을 텐데...


왜 여자는 집안일과 양육의 책임자가 되어야 하는. 자의 인생에 부엌일을 뺄 수는 없는 걸까. 엄마가 그리운 날이다. 나도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이 먹고 싶다. 그런데 우리 엄마도 오늘 아빠 밥상 차려주고 설거지하며 그렇게 하루를 보냈겠지... 서글픈 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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