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백분의 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바 May 13. 2018

첫 번째 양말

 이름을 정하고 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훅 내려간 느낌이었다. 방법은 미리 생각해두었다. 문 앞에 양말과 쪽지를 붙여놓을 것.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이 있다. 쪽지에 들어갈 내용 생각하기!

 핵심은 물건 파는 사람 아니에요. 그냥 드리는 거예요. 제 진심을 받아주세요. 가 1g이라도 느껴지게 할 것.




안녕하세요! 우사단로 어딘가에 살고 있는 이웃,
베바입니다.
제 하루의 행복은 양말이에요.
예쁜 양말을 신고 길을 나서면
그날은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거든요.
로또 맞을 확률, 지하철을 놓치지 않을 확률,
수많은 확률 속에서
1/100의 확률로 이 문 앞에 놓인 양말,
문 너머 어떤 분이 계신지는 모르지만
하루의 소소한 행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This is for you!

#백분의일 #beba #첫번째양말


 쪽지의 맨 마지막 부분은 원래 첫 번째 양말, 두 번째 양말, 백 번째 양말.. 이런 식으로 적어두려고 했다. 그때 같이 있던 K가 말했다. 다 첫 번째 양말로 하라는.

 오 좋은데?

 생각해보니 매 순간 첫 번째 양말이다. 집들은 나에게 늘 첫 번째. 그 양말을 받는 누군가도 이런 일이 첫 번째.

 

 이름도, 쪽지 내용도 정해졌으니 이제 정말 시작이다. 첫 번째 양말 다섯 켤레를 챙겼다. 하루에 다섯 켤레씩 20일을 붙여야지, 가 일단 목표였다. (언제 수정될지 모른다.) 준비물은 양말과 쪽지, 마스킹 테이프!

 사람들이 많지 않은 휴일 오후. 눈 앞에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두리번두리번. 적당한 문을 찾았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양말을 꺼내 테이프로 고정시키고, 그 옆에 쪽지를 붙였다.

 첫째 날, 그렇게 총 다섯 개의 문 옆에 양말을 붙였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린 탓에 숨이 가빴지만 기분이 좋았다.

 


첫 번째 양말의 첫 번째 양말

 




 


 


매거진의 이전글 백분의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